나는 백(白)을 잡았다. 더 강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손에 쥐고 보니 백(白)이었을 뿐이다. 녀석과의 전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초반부터 기세등등한 것은 녀석 쪽이었다. 내겐 시작부터 형세가 불리했다. 정확한 형세 판단은 승기의 밑거름인 법이다. 남의 집이 커 보이면 진다고 했던가? 그래, 결국 심리전이다. 심리에서 밀리면 끝이다.
촘촘히 자리잡은 녀석의 수(手), 나는 어디가 급소인지 알 수 조차 없었다. 하지만 공격은 최선의 수비라 했다. 일지매 유창혁[劉昌赫]을 흠모했던 나다. 그의 공격은 진정 일류였다. 그의 기세를 옮겨오고 싶었다.
착점... 한 수만 삐끗해도 나의 공세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이런 녀석에게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정석으로 대응했다. 그저 보이면 공격하고, 버티면 또 공격했다.
매일 한 두 차례씩 전투를 벌였다. 전투를 벌일 때마다 나는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며 의지를 다졌다. 이 게임은 장기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구력 싸움으로 승부가 난다.
슬슬 효과를 보는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산이라도 집어 삼킬듯한 녀석의 기세에 맞서 호각세를 이루게 되었다. 일수불퇴의 승부에 역시 묘수는 없다. 지치면 안된다.
녀석은 날일자 행마를 즐기는 것 같다. 날일자는 건너붙이라 했다. 이건은 진리. 날일자 사이로 한칸 건너가 붙여본다. 효과가 있다. 행마가 뛰어나도 잡는 방법은 있다.
몇몇 주요 지점으로 녀석의 힘이 확산되지 않게 끊어내야 했다. 길을 끊지 못하면 녀석은 무궁무진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어려운 승부의 구간이다. 끊임없이 맞서다 보니 내쪽도 자원 소모가 크다. 대마를 잡으려다 곤마(困馬)에 빠져서는 안된다.
지루한 패싸움에 들어왔다. 녀석이나 나나 팻감 하나 두고 양보가 없다. 잡아야 한다. 여기서 밀리면 대마를 잡을 수 없다. 다시 체력전이다. 나는 힘을 끌어모아 공격을 재차 감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 잡았다. 대마(大馬)를!
나는 승부수에 돌입했다. 그리고 '가일수(加一手)'라 했던가? 세를 얻어냈지만 한 수를 더해서라도 확실히 지켜야 한다. 이건 많은 선배들의 조언이기도 하다. 승기를 잡았다고 방심하지 마라. 확실히 끊을 때까지 공격을 지속해야 한다... 공격의 고삐를 풀었던 많은 선배들이 후회를 했다. 녀석은 질기게 살아남으니까.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확실히 승기를 잡은 것 같다. 공배(空排)는 메우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 그정도 여유도 있다. 내가 방심하는 것일까? 아니다. 승기는 확실하다.
녀석의 패착은 무엇일까? 녀석은 늘 강했다. 다만 나의 지구전에 힘을 다했을 뿐이다. 처음 승부를 시작할 때는 막막했는데 이제는 한결 마음이 놓인다.
나는 그렇게,
백(白)으로 승기를 잡았다.
이 기쁨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