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도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을 때
: 섬 만들기
KTX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렸다. 나를 모르는 이들이 가득한 곳으로 숨어버리면 숨통이 트일까 해서. 부산부터 대구까지 참 많은 경로들을 찾았지만 결국엔 어느 하나도 예약하지 못한 채 창을 닫는 하루를 보냈다. 올 초, 휴식이라는 명목 하에 해외여행을 계획했지만 결국 숙박과 일정, 맛집을 찾느라 집에 있는 것보다 바빠진 내가 과연 국내라고 쉴 수 있으려나, 라는 생각도 불현듯 났다.
떠나고 싶은데 준비하고 싶지는 않아. 어르신들이 패키지여행을 다니는 이유를 이해했다. 무릇 낯선 타지로 떠나는 행동은 설렘을 동반해야 하는데도, 더욱 쭈글쭈글해진 마음으로 연신 귀찮다는 마음을 가졌다. 서울 내에 있는 숲이라거나 비교적 한산한 카페를 찾아다녀도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를 뺀 모두가 여름의 끝물을 즐겼다.
중요한 건 번아웃의 도피처였던 나의 취미생활, 책과 영화가 지긋지긋해졌다. 차마 싫다고 말은 못 하겠고, 딱 그 말. 지긋지긋. 굳이 책을 펼치거나 영화를 틀지 않았다. 특히 여운이 남는 영화들은 그저 왓챠에만 저장해 둘 뿐. 그렇게 쓸데없이 쌓아둔 ‘보고싶어요’는 백 개를 돌파했다. 할 일까지 미루는 걸 넘어 취미까지 미루는 생활이라니. 현재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을 추천해달라면 선뜻 자진할 만큼 나른하다못해 지루한 낮과 밤들.
이사 오자마자 가장 사고 싶었던 흔들의자에 앉아 끊임없이 발을 움직이며 수동으로 몸을 흔들어댔다. 그러다 그래, 여기 이렇게 잘 곳 있고 에어컨도 있고. 손쉽게 휴대폰으로 맛집을 찾아 배달도 시킬 수 있으니 푹 쉬자, 고 생각했고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카톡 알림을 끄는 것이었다. 오롯이 나 혼자 쉴 수 있는 섬을 만들었다. 물론 여태까지도 방에 있었지만, 카톡을 끄는 것만으로도 나의 사회생활과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상태메시지에는 ‘19일까지만 쉬어요’를 ‘22일’이라고 바꾸는 등 날짜를 계속 늘렸고, 지금의 상메는 ‘묵묵부답 : 충전중’.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확실히 휴식의 효율은 높아졌으니 당분간은 이렇게 지낼 계획이다. 급한 일이 생기면 얼른 해치우고 다시 섬으로 쏙. 그렇게 만들어진 최근의 내 섬은, 상업영화와 상업유튜버의 판이다. 여운도 없고 생각할 거리도 없지만 그냥 웃고 울면 끝나는 것. 스크린에서 머무는 영화를 싫어했지만 그건 내 정신이 건강할 때의 취향이었으니까.
재깍재깍 답장하던 내가 스멀스멀 사라졌으니 지인들은 무슨 일이냐 물었다. 주절주절 설명할 것 없이 ‘피곤해서, 좀 쉬려고.’라 답했다. 자취방을 오두막 삼아 섬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조금 오버하면 도시 속 자연인이 된 기분이다. 어딘가에 로그인하지 않고 인터넷 여기저기를 활보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났는데, 나는 카페에 갈 때 가장 먼저 카톡을 켜서 밀린 답장을 해치운다는 것. 친구에게 답을 하는 것도 일의 연장선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나.
인간관계와 거리를 두고 상업영화와 재미만 추구한 유튜브, 그리고 다 때려 부수는 게임, 졸릴 땐 스쿼트. 본능적으로 행동하니 정말 이상하게 충전이 된다. 부산과 대구를 가지 않아도, 저 멀리 서울숲이라거나 꽃이 가득한 플라워카페를 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평소 사랑하는 장강명 작가의 소설이라거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잠시간 피했을 때의 행복. 나는 저 반대편의 취향을 탐닉했고 그러자 다시 장강명과 박찬욱의 작품을 볼 힘이 생겼다. 2학기는 조금 더 건강해진 나를 만날 수 있겠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