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지 않은 지 2주가 되었다
@hyunyoa 요아
스무 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왜 학창시절에는 일기를 쓰지 않았을고 하니, 스터디플래너 때문이었다. 시간을 잘게잘게 쪼개 단위별로 공부를 하고 공부에 대한 반성, 공부에 대한 칭찬만 담느라 바빴으니까. 나머지 일상을 적으려 해도 당시에는 낙서를 하는 기분이었다. 공부가 아닌 얘기는 적기 힘들었다. 그래서 스물이 되었을 때, 온전히 공부가 아닌 '내 일상'을 적을 수 있다는 사실이 두근두근했다.
그렇게 스물넷인 지금까지 5권의 일기를 채웠다. 시험기간이라거나 아픈 날을 빼고는 꾸준히 적었다. 모두가 '일기장 꾸미기'라 하면 나를 떠올릴 정도로. 스티커라거나 펜에도 상당한 양의 돈을 썼다. 올 초 홀로 떠난 프랑스에서는 일기장을 잃어버려 그 펍에 연락하고, 다음날 아침에 다른 곳으로 떠냐아 했으므로 두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일기장을 찾으러 새벽에 버스를 탄 기억도 있다.
물론, 일기장 안이 모두 빽빽한 건 당연히 아니다. 오래된 긴 상념을 적는 날도 있었지만 '귀찮아 귀찮아 오늘은 열여섯 시간을 잤다 야호!'같은 글 한 줄을 적는 날도 많았다. 그래도 나름 5년을 한가지에 몰두해 포기하지 않았다는 뿌듯함, 당시에는 심각했던 고민이 지금에서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것에서 배우는 무소유의 관점(?) 들을 배워나갔으니. 내 자양분이 된 글쓰기의 5할은 독서, 3할은 일기, 2할은 영화다.
그런데 그 3할인 일기를 도저히 쓰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하니, 이제 졸업을 하고 진로를 정해야 할 나이가 오니 주변 이들의 불안함과 나의 불안함이 만나 엄청난 증폭!을 이뤄버리기 때문인가. 요즘의 나는 스터디플래너를 썼던 학창 시절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다.
난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 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이토록 바라고 열렬히 노력했던 것들의 성과가 오기는 하는 걸까 등의 감정들이 일기장을 펼치면 휘몰아친다. 우울해지고 싶지 않아 일기를 쓰지 않는다. 우울을 가라앉히기 위해 표현했던 일기장이었는데. 신기하고 낯설다.
그래도 나는 내 나이에서 열을 뺀, 열네살의 기분으로 살고 있다. 친구가 취업에 관한 얘기를 물어도, 그냥 "몰라!"라고 환하게 웃는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생각 없어 보이는 바보 같은) 삶.
토익, 한국사, 오픽, 컴활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딸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 모션그래픽 프리미어를 배우고, 일요일에는 빅데이터 파이썬을 배운다. 평일에는 뜬금없이 판타지 웹소설을 쓴다. 프리미어나 파이썬을 배운다는 것에 애들은 부러워하지만, 그렇다고 어떠한 자격증을 딸 생각은 없다. 그저 스물넷에 와서야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분야를 찾는 중이다.
바보같은 삶을 12월까지만 조금 더 즐겨야지. 취업에 고통 받지 않는 졸업반이라는 수식어가 굉장히 이상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막학기에 6학점, 9학점 듣는 친구들의 곁에서 나는 홀로 17학점을 듣는다. 취업보다는 배우는 것에 초점을 두어. 주변 모두 취업을 걱정하고 있으므로 내가 걷는 길이 맞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2019년까지는 열넷으로 살 계획.
(재미는 있지만 불안함은 여전해서 일기를 쓰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