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관계에 대하여
written by @hyunyoa
일은 어렵지 않았는데, 사람 대하는 게 어렵더라고. 내가 이 말을 할 줄이야.
지인이 물었다. 국문과 동기 중 인턴을 경험해 본 사람이 별로 없으니, 물어볼 곳이 없다며. 인턴 생활에서 어떤 게 가장 힘든지 궁금하다고. 난 답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는데, 사람 대하는 게 어렵더라. 나를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잘해야만 하는 일방적 관계. 상대방이 화를 내도 짜증 내면 안되고, 마주칠 때마다 미소 띠어야 하는 그런 관계 말이야.
3개월이면 끝이 보이는 인턴십이니 괜찮았다. 문득문득 17층에서 떨어져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어도, 한 달만, 일주일만 참으면 더는 보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기에. 스쳐 지나갈 인연에 큰 감정 소비를 하지 말자 다짐하며 버텼다. 하지만 일방적인 관계는 사내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학창시절 때에도 겪었지만, 내가 마음을 주고 있는 관계가 사실은 내가 놓으면 끝나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다.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시간이 생겨 그간 주고받았던 메시지들을 훑어보는데, 만남을 주최하는 사람은 줄곧 나였다. 속상했다. 먼저 연락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호기심이 생겨 연락을 멈췄더니 약속 전날에도, 그 당일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연락은 없었다. 계속해서 바뀌는 프로필 사진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나지 않았다.
재미로 본 사주에, 분명 나는 인복이 많다고 했었는데. 모두 거짓인가. 위태로운 줄을 잡듯 이어간 옛 연인도 있었다. 상대방의 잘못에 화를 내면 화를 낸다고 도리어 성을 내던 그. 홀로 기념일을 챙기고, 편지를 쓰고, 데이트 코스를 짜야 했던 날들. 지금 보면 당연히 잘못된 관계였음에도, 당시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관계의 바닥이 보임에도 눈을 감은 채 계속해서 줄을 잡던 때가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내가 일방적으로 이어나가려 했던 관계들도 있었으나, 반대로 나는 관심 없었음에도 누군가가 계속 이뤄낸 관계들도 존재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고 힘든 일이 있느냐며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던 이들이나, 내게 무엇을 바라지 않고 연락을 해오던 이들. 늦게서야 알게 된 그들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 기적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은 연애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지만, 나는 모든 관계라고 생각한다. 친구, 가족, 그리고 스쳐 지나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한.
이제껏 관계에 많이 데였으니, 앞으로 사람을 잘 믿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또 나는 바보처럼 사람을 믿고, 또 데이고, 믿고, 데이고를 반복한다. 그러나 예전보다 성장했음을 느끼는 건,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는 것. 좋은 사람들은 많을 테니까. 굳이 이 사람이 아니어도,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를 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대도 말이다. 사람에 치여도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