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와 성노예라는 표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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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kkae@eokkae님이 쓴 글 놀고 앉았네 ⑧ ‘위안부’ 용어 사용은 친일부역의 소치다을 읽고 논의를 해볼만한 주제라고 생각해서 예전에 제가 썼던 글을 업어왔습니다.

저는 일제가 만든 '위안부'란 표현이 악랄하고 기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성노예란 표현도 다소 불편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그가 쓴 책에도 언급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위안부를 '일본군 성노예'란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전 그의 그 주장이 피해자와 멀리 떨어져 있는 힐러리가 사안에 대한 평가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래 글은 제가 2012년도에 지금은 폐쇄한 제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그 해 8월엔 페북에도 제가 올렸더군요.


힐러리 미 국무장관이 올 3월 그동안 일본군 종군위안부(Comfort Women)라고 불렀던 여인들을 강요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위안부라는 명칭이 강제된 폭력성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는다는 이유였죠.
그리고 8월 16일 미 국무부 대변인은 공식적으로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명칭을 함께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내 반응은 나쁘지 않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도 '성노예'라는 표현이 맞다고 힐러리의 발언을 반겼고, 국내 언론들도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힐러리의 발언을 지지했습니다. 힐러리 장관도 분명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비인간성을 전면적으로 지적하기 위해 이런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 용어가 좀 불편합니다. 가해자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위안부 피해자들이 '성노예'라는 표현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물론 취지를 고려해서 나쁘지 않게 보는 분들도 있겠죠. 그렇지만 자신을 '성노예였던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 편치 않은 마음을 갖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개인이 어떤 인간적 모멸을 느끼는 폭력을 당했을 때 과연 가해자의 잔인함을 표현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이런 폭력을 당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까요? 그리고 피해자들이 특정되고, 이미 언론에 노출된 상태라면 어떨까요? 과연 힐러리는 이런 것을 고려해서 성노예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용어를 정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5.18 광주항쟁을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광주사태'로 불러 광주시민들의 빈축을 샀습니다. 5.16을 군사정변이나 군사쿠데타, 구국의 혁명으로 부르는 것도 모두 역사를 둘러싼 시각의 차이죠. 물론 위안부에 대해선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각 자체의 차이는 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가해자보단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용어를 정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저는 꼭 '위안부'라는 용어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노예'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말한 힐러리 장관이 과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직접 뵜을 때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죠. 가해자의 폭력성을 드러내기 위한 용어가 자칫 피해자에게 가시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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