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당신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 당신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것은 그대의 책임이다! 그대가 불행하다면 그 불행을 책임질 사람은 바로 그대이다. 전생 탓도 아니고, 사회구조나 경제시스템 탓도 아니다. 그런 태도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먼저 그대 자신이 변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회구조 속에 있다 해도 그대는 불행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어떤 경제 시스템 속에서도 그대는 불행할 것이다. 그대가 변하지 않는다면 어떤 세상 속에 살아도 그대는 불행에서 벗어날 없다.
그대가 존재계와의 마찰을 그만둘 때, 난생 처음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이 모든 위대한 종교에서 '에고를 버려라!'하고 강조할 때 의미하는 바이다. 그들은 '마찰을 그만 두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대가 그것을 더욱 더 분명하게 명심하기를 바란다. 에고를 버리라는 말은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에고라고? 에고가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에고가 무엇인가? 단어 상으로는 매우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에고를 버려라.'하는 말은 매우 막연한 말이다. 명확하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투쟁을 포기하라!'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다. 에고는 투쟁적인 태도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연의 정복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대는 자연의 일부이다. 어떻게 부분이 전체를 정복할 수 있겠는가? 그 어리석음을 알라. 그대는 전체와 조화를 이룰 수도 있고, 부조화 속에 마찰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데 부조화의 결과는 불행이며 조화의 결과는 행복이다.
전체와의 조화는 깊은 침묵과 기쁨, 환희를 낳고, 마찰과 갈등은 불안과 번뇌, 스트레스와 긴장을 낳는다.
에고는 그대 스스로 만들어 놓은 긴장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 긴장을 창조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계속해서 긴장을 만드는가? 거기엔 뭔가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다. 왜 모든 사람들이 자아를 창조하는가? 그것은 진정한 자아를 모르기 떄문이다. 자아가 없이는 살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 자아, 사이비 자아를 창조한다. 그것은 진정한 자아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진정한 자아는 완벽하게 알려질 수 없다. 진정한 자아는 항상 신비롭고 정의(定意)하기가 불가능하다. 진정한 자아는 너무나 광대해서 그대는 그것을 규정할 수 없다. 진정한 자아는 신비하기 그지없어서 그 핵심까지 뚫고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진정한 자아는 전체의 자아이다. 인간의 지성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