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을 올바로 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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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을 올바로 안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원인과 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깨닫는 것이다.
공성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안다는 것은 현상과 공성의 결합을 깊이 안다는 뜻이다.

어떤 해설을 읽거나 듣는 것만으로는 공성의 깨달음에 깃들어 있는 의미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남을 해치는 일을 삼가고,
연민의 마음을 넓히는 계율을 수행하고,
제불보살과 그 밖의 다른 스승들에게 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기원하면서 궁리해봐야 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긍정적인 원인이 필요하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色不異空 空不異色

"형상이 공이고, 공이 형상이다. 형상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형상과 다르지 않다."
이 간결한 말에는 다양한 뜻이 담겨 있다.

1.사람과 사물은 모두 그것을 야기하는 원인과 그것을 이루는 부분에 의존해 있으며그것들과 별도로 존재할 수 없다. 그것들은 연생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현상은 연생이므로 그것들은 공성을 가지고 있다.

2.거꾸로 말하면 존재와 사물은 독립성 또는 고유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그것들은 다른 요소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것들은 연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형상의 공성은 형상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조건에 따라 발생하고 붕괴되는 형상 그자체는 그 본성상 본래적인 존재가 결여되어 있다.

4.본래적인 존재가 결여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그것들의 궁극적인 실재이자 지속양식,다시 말해 궁극적인 존재양식이다.

5.요컨대,형상의 생성과 붕괴 그리고 증가와 감소 등이 가능할수 있는 까닭은 그것에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형상과 같은 현상은 공성의 영역 속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반야심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형상이 공이고, 공이 형상이다. 형상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형상과 다르지 않다."
이런 식으로 공과 연생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형상은 공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없는 것이 아니라, 형상 그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공성은 현상에 어떤 사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현상 그 자체는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뜻하는 말이다.

현상이 공이라는 말은 형상의 궁극적인 성질상 그 본래적인 존재성이 당연히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다.

형상은 연생이기 때문에, 그것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힘을 가진 실체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공이 형상이라는 말은 공의 유희라고도 할 수 있고, 조건에 의존해서 공으로부터 성립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형상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본래적인 존재성이 당연히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며, 다시 말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원리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형상은 공의 토대이므로 공은 곧 형상이다.

형상은 공이 반영된 것으로 나타난다.

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사물은 공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연생이라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사물은 연생이기 때문에 그것들에는 본래적인 존재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이해하는 편이 더 쉽다.

머릿속으로는 전자를 매우 잘 알고 있는 듯하나, 느낌의 차원에서 그렇게 경험하기란 어렵다.
요즘 나는 나가르주나의 [용수보살권계왕송]에 나오는 말 하나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경우가 잦다.

사람은 지대(地大)도 아니고 수대(水大)도 아니며
화대(火大)도 아니고 풍대(風大)도 아니고 공대(空大)도 아니며 식대(識大)도 아니고 그것을 모두 합친 것도 아니다.
이것들 외에 달리 무슨 사람이 있겠는가?

먼저 그는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적 요소들, 즉 지대(고체), 수대(액체), 화대(열),
풍대(숨)와 공대(식도 같은 빈 공간)가 자아라고 할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다음으로 그는 의식을살펴본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 모든 것들의 합이 자아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아가 이러한 것들과 다른 것일 수 있는지를 수사학적으로 묻고 있다.
이 중에서 어떤 방법을 택한다 해도 자아는 결코 찾을 수 없다.

나가르주나는 곧바로 자아는 실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끌어내지는 않고 있다.
그보다는 그 문구 바로 다음에 그는 자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열거한 여섯 가지 요소에 의존해서 성립된 연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서로 의존하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자아는 실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6대의 합성물에 의존해서 성립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은 실재적인 것이 아니다.

여기서 "실재적인 것이 아니다." 는 말은 그저 자아는 여섯가지 요소 가운데서, 혹은 그와는 별도로 찾아본다 해도 구할수 없다는 뜻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나가르주나는 본래적인 존재의 공성을 깨달은 마음이 단순히 자아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차릴지라도 연생이라는 앎을 진작시키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나는 그가 제시한 방법이, 자아가 본래부터 존재한다고 믿는 극단적인 생각을 모두 피하는 데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여기고 있다.

깊은 성질을 살펴보듯 쳐다보면 본래적인 존재의 공성이 보이고, 다른 식으로 쳐다보면 현상 그 자체의 모습만 보이게 마련이다.
그것들은 하나의 통일체다. 따라서 형상이 공이고 공이 형상인 것이다.

우리는 공의 뜻에는 연생의 의미도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들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공성을 꿰뚷어 볼 수 있는 지혜가 보다 분명해질수록 사물은 원인과 조건 그리고 자기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것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즐거움과 고통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물은 공하므로 모든 것이 쓸모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공성과 허무주의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공성을 올바로 안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원인과 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깨닫는 것이다.

공성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안다는 것은 현상과 공성의 결합을 깊이 안다는 뜻이다.

공성을 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본래적인 존재가 있다고 하는 착각에 해독제 역활을 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이렇게 되어야 공성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해설을 읽거나 듣는 것만으로는 공성의 깨달음에 깃들어 있는 의미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남을 해치는 일을 삼가고,
연민의 마음을 넓히는 계율을 수행하고,
제불보살과 그 밖의 다른 스승들에게 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기원하면서 궁리해봐야 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긍정적인 원인이 필요하다.

  • 달라이 라마, 삶을 이야기하다 中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