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나을만하면
첫째녀석이 어린이집에서
감기를 데리고와서
둘째녀석은 한집에 살고 있는 탓에
그 감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어제부터 둘째녀석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다
새벽에도 계속
가래낀 기침을 해대는 통에
잠을 잘 못자는 둘째녀석이 안쓰러웠다
아침이 되자마자
바로 소아과로 향했다
며칠전 소아과에 갔을 때
사람이 많은 시간에 가서
호흡기 치료를 집에서 하라고
기계를 대여해 주셨다
1번 약 넣고 5분
2번 약 넣고 5분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번씩
해야한다고 했다
둘째녀석을 안고서 호흡기기계를
입에 갖다대니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쳐대기 시작했다
나는 힘도 들고
사실 하루 두 번하는게 귀찮아서
'이 어린애가 10분을 가만히 버틴다는게 말이돼?'
'이거로 얼마나 치료가 되겠어'라며
또 핑계의 합리화를
해대기 시작했다
소아과에서 30분정도 기다린 끝에
선생님이 진료를 봐주셨다
"호흡기 계속 잘 해주셨죠?"
"아니...그게...사실 잘 못했어요..(긁적긁적)
애가 너무 움직여대서^^;"
의사선생님은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둘째녀석에게 바라보며
나 들으라는 듯
혼 아닌 혼을 내기 시작하셨다
"아니 너 기침심해서
몇개 없는 호흡기 기계 빌려줬는데
기껏 빌려간 녀석은 안하고
못 빌려간 녀석은 응급실에 실려가고
그럼 되겠어 안되겠어?
오늘부턴 잘 해야돼 알았지?"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팍에 뭔가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띵 해졌다
내가 빌려가지 않았다면
그 아이가 응급실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빌려가서 열심히 사용했다면
못 빌려간 아이가 덜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병원에서 빌려주는걸
무지 당연하게 생각했다
내 아이가 지금 아프니까
그정도는 병원에서 해주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기계는 한정되어 있고
아프다고 소아과에 오는 아이들은
많았다
난 다만 운좋게 얻어 걸린 것일 뿐
당연히 내가 가져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아이가 소중한만큼
남의 아이도 그 엄마에겐 소중할 것이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
눈이 치워진 거리도
별일 없이 무탈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누리고 있는 것처럼..
★ 책 속의 공감 글귀
<누군가에겐 전부인 사람>
어느 기업에서 글쓰기 강연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벽면에 달라 붙어 있는 메모판에
짧은 문장이 쓰여 있었는데,
찬찬히 읽어 내려 가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시선이 멈췄다. 뜨끔했다.
평평한 길을 걷다가 돌연 가파른 절벽을
만나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해 주세요
이곳을 청소해주시는 분들,
누군가에겐 전부인 사람들입니다.
-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중에서 -
이 글을 읽으며 마음이 울컥해졌다. 생각해보면 인간관계만큼 힘든 일이 없는 것같다. 상대방도 하나의 인격이고 오랜세월 자기만의 내공이 있기에 나랑 의견이 안 맞는건 당연하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세상엔 나와 맞는 사람보다는 안 맞는 사람이 더 많기에 인간관계가 힘들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도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누군가라도 상대방이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에겐 전부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사람으로 인해 힘들었던 마음이 좀 위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