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책은 이번이 세 번째다.
<오빠가 돌아왔다>를 시작으로
<살인자의 기억법>, <오직 두 사람>으로 이어졌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 베스트셀러라서 대체용으로 빌려왔던 것이다.
이것도 오직 두 사람처럼 여러 개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제일 첫 장 ‘오빠가 돌아왔다’편은
정말 낄낄대며 봤던 기억이 난다.
막장의 이야기였는데..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아마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역시나 재미있다는 것을...그리고 휘리릭 읽힌다는 것을..
김영하 작가의 글은 항상 편하게 읽힌다.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툭툭 내뱉는 것 같은 말투도 좋다.
김영하 책을 읽다보면 몰입이 되어 속도를 내다가도
때로는 천천히 느리게, 참 더디게 읽히는 구간도 있다.
그러다가 책을 덮을까 하는 순간 정신을 번쩍 들게하는
재미와 당황스러움을 선사한다.
독자와의 밀당을 유도하는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오직 두 사람>은 7개의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어떤 언니에게 쓰는 편지글로 시작이 된다.
편지 글 서두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한번 상상해보세요. 언니는 희귀 언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의
소수민족 출신으로 스탈린 치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수십 명 중 하나에요.
뉴욕에서는 이 언어를 쓰는 사람은 언니네가 전부에요.
(중략) 마침내 오직 언니하고 다른 한 명만 남아요.
둘은 어쩌면 전 세계에서 이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일지도 몰라요.
그러던 어느날 이 둘, 최후의 두 사람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의절을 해요.
그러곤 수십년 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아요. 결국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요.
저는 생각했어요.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에 대해서요.
이제 그만 화해하지 그래. 라고 참견할 사람도 없는 외로움.
왜 갑자기 상상을 해보라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직 두 사람>편을 다 읽은 후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읽어보면
왜 서두에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갈 듯하다.
이것이 오직 두 사람 편에서 다루고 있는 전반적인 내용이자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의 지금 현재,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감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 그대로 아이의 실종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주인공 부부는 여느 때처럼 아이를 데리고 대형마트를 가기로 한다.
마트에 가기 전 작가는 불길한 힌트를 준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냥 소파에 누워 프로야구나 보게 내버려두었다면,
우리는 아무일 없이. 아직도 남향의 그 햇볓 잘 드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을 것. 이라고.
결국 아이는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그러지 않았기에’ 불행은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지나고 보니 어찌어찌 견뎌냈다.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은 바로 지금인 것 같다.
언젠가 실수로 지름길로 접어드는 바람에 일등으로 골인하고서도
매달을 빼앗긴 마라토너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이 이야기는 세월호 사건 이전에 구상하고 서두를 써 놨다가
사건 이후에 다시 꺼내 집필에 착수를 한 작품이라서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이를 잃어버림으로써 지옥에 살게 됩니다.
아이를 되찾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지옥은 그 아이를 되찾는 순간부터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이를 찾습니다>편은 뭔가 씁쓸하지만 마지막에 새로운 희망을 보게 해준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힘든 순간을 겪을 때마다 서진은 돌아가고 싶었다.
인생의 원점. 자신이 떠나온 곳. 사람들이 흔히 고향이라 말하는 어떤 장소로.
그가 누구인지 모두가 아는 곳으로.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지점이 어디 인지 알 수 없었다.
<인생의 원점>에서는 이미 유부녀가 된 한 여자(인아)를
인생의 원점이라고 생각했던 한 남자(서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아와의 불륜으로 인해 서진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인아의 남편이 아니었다는 것이 반전이었다.
한 정신병원에 철석같이 스스로를 옥수수라 믿는 남자가 있었다.
오랜 치료와 상담을 통해 자신이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을
겨우 납득한 이 환자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귀가조치 되었다.
그러나 며칠 되지도 않아 혼비백산 병원으로 되돌아 왔다.
(중략)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환자는 말했다. “글세,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옥수수와 나>는 자신을 옥수수라 생각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첫 시작부터 웬 뜬금포 내용인가..이 이야기는 꽁트인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 이 부분을 읽을 때..사실..이게 뭔말이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다 읽고나서
다시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간다.
이 편이 제일 양이 많다보니 읽다보면 지루해지는 부분이 살짝 있었는데
갑자기 19금의 수위를 넘을랑 말랑하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게 하는 이 부분과 맞닥뜨렸을 땐
눈이 번쩍 뜨이고 책 페이지는 번개처럼 넘어갔다.
사실 이 이야기의 제목을 보고선 뜬금없지만 @corn113님이 떠올랐다.
단순히 옥수수 = corn 이라서..
아무래도 스팀잇에 단단히 중독이 된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가 죽은 후 실은 주인공 말고 다른 아들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둘 중 생전에 아버지가 입었던 슈트가 잘 어울리는 사람에게
슈트를 주겠다고 해서 주인공이 슈트를 입게 되었지만..
주인공이 진짜 아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재미있게 읽긴했지만..끝이 불분명하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최은지라는 직장 부하 여직원과 박인수라는 친구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최은지라는 직장 여직원과의 일은 충분히 현실에서도
오해 받고 있을 수 있는 일이어서
친절한 호의를 되려 이용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을 나갈 수가 없다. 공포와 권태의 방, 무슨 수를 써도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다.
(중략)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으스스한 방 탈출 제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무래도 우리에겐 종료의 권한이 없는 것 같아.
(중략)그렇게 그들의 일상이 다시 시작 되었다.
이상한 지하방에 갇힌 네 남녀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그 방에서 공포도, 권태로움도
놀라움과 실망도 느끼게 된다.
이 방을 탈출하려고 부단히 애를 쓰지만..결국 나갈수 없었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권태와 실망을 느끼게 되지만
일상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일생을 마감하지 않는 한 없다.
인생에는 정답같은 것이 없고..
애초에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는 모른다.
작가는 우리의 일상 또는 인생의 허무함과
답답함을 갇힌 방에 비유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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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자연광으로 모니터를 볼 수 있는 시점에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