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킷 공장에서 반복적으로 비스킷을 굽는 5천명의 상근직을 보며 작가는 질문합니다.
비단 비스킷 굽는 일에만 적용될까요? 제가 다니는 자동차 연구소에도 1만명 가량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주로 진행하는 파편화된 서류업무만으로는 자동차를 만드는 일 전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이 느낄 수 있는 성취와 만족감 역시 개별적인 숙제로 남아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물론 일에는 분명히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일에 정신을 팔게 해준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했습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기만 한다고 해서 어느 날 문득 인생을 제대로 사는 법을 깨우치는 건 아니지만, 하루하루 쌓이는 성실한 생활이 주는 기분 좋은 피로감이나 물질적 풍요는 충분히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서 받을 수 있는 의미가 개개인 삶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마음한 구석에는 공허한 마음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한 발 물러서서 삶을 조망하며, 일과 여가의 균형을 잡고 싶었습니다. 개인보다 단체의 논리가 강한 회사와 내 삶은 구분이 필요했습니다. 내가 정한 목표를 이뤄냈을 때의 기쁨과 실패 했을 때의 슬픔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기에 받는 느낌의 크기가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일에서 아무리 큰 만족감을 얻어도, 찰스 핸디가 이야기한 ‘텅 빈 레인코트’를 채우려는 시도할 때 오히려 살아있음을 경험했습니다.
(되도록) 하루 한편 글쓰기 프로젝트
글감이 떠오르지 않지만 일단 써보는걸 목표로 합니다.
"좋은 스티머는 엉덩이에서 시작된다"
준(joon)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