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인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자유다.
삶의 강렬함은 탈선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운명에 의존 하면 신이 내린 자유의 위지 마저 상실 한다.
고등학교때 세계여행을 수번씩 한 쌤이 "카사노바"가 누군지 아는 사람?
하고 질문을 합니다
그런대 또 나서기 잘하는 본인이 손을 번쩍 들고 답하기를 "나이트클럽"입니다
그랫다가 엄청난 폭소와 함께...
날아오는 지휘봉에 머리가 박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잊어 버리지 않는 그 사건의 주인공 "카사노바" 그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희대의 난봉꾼이며 박식하고도 멋진 "카사노바"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호색한"이란 이름으로 기억되죠.
1725년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그는 귀족 여인들과
끊임없는 애정 행각을 벌이며 육체적 쾌락과 권력,돈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각종 기록에 그는 키가 2M에 이르고 박식한대 다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여성에게 상당히 매력적이었으며 신 사업에 과감히 투자하는 벤처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고향 "베네치아"를 떠나 빠리 사교계를 다니던 카사노바는 1757년
당시 빠리 재정난을 타계하기 위한 복권 사업을 루이 15세에게
건의해 막대한 부를 축척했고 그 돈으로 염직물 사업을 하기도 했으며
베네치아에서 출판업으로 성공하여 책을 구하려고 사람들을 베니치아로
모여들게 해 도시 발전에 큰 기여를 해 진보 사상인
계몽주의 선봉자 이기도 했습니다
호색한이며,벤처사업가,개혁사상가인 "카사노바"의 공통점은
미천한 자신의 태생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런대...
어찌 하여 이 사람에게 탕아,"호색한"이라고 알려저 있을까요?
"남자가 유혹 할 수 없을 만큼 정조 관념이 굳은 여자는 없다"
첫직업이 성직자 였던 그는 첫 경험이 자매였으며
친구사이인 수녀,부녀들과 한 이블 속에서 동침 하며
"삶의 강렬함은 탈선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약 100여명의 여자와 사랑을 나누며 모녀와의 동침때는
자신의 딸일 가능성을 알고 있었으며 그마저도 기록으로 남겨
희대의 난봉꾼임을 자초 했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기쁨을 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며
극에 달한 올가니즘을 가능하게 한 음식으로는 식초,박하,올리브오일을 곁들인
계란 횐자 샐러드 등 퓨전요리를 개발 하였으며 베네치아 전통요리중에
카사노바의 창작물이 많다고 합니다
사기의 대명사...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에 언변술이 대단해 각국 나라말을 두루 섭렵하고
신비주의에 푹빠진 후작 부인에게 원하는 대로 환생 시켜 주겠다고
7년동안 사기를 치며 100만 프랑을 갈취 하기도 했으며
반면 모짜르트를 도와 "돈 조바니"의 개사를 도왔고
러시아 "예카테리나"대제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으며
음악적 재능도 뛰어나 사무엘극장의 바이얼린 연주를 하며 생계를 유지 했고
연극,의학,철학,수학의 저서를 대략 40여편 출간 하기도 했답니다
자유에 대한 미친듯한 그의 삶중에 유명한 말을 남기는대
"운명에 의존하면 신이 내린 자유의 의지 마저 상실한다"
출처 다음블러그
요즘 이 자유에 대한 경종을 울리며 갑질 횡포에 대한 성추행 사건이
대한민국을 떠들썩 하게 합니다
권력과 지위를 이용 물의 를 빛고있는 00는 현대판 카사노바가 아닌지
씁쓸한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