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부처님 오신날, 남한산성에 올랐다.
산성역에서 내려, 등산로를 따라 1시간 정도 걸어 남문에 도착했다.
당당한 위용이다. 원래 가파른 산세에다 이 정도 높이의 튼튼한 성벽은 난공불락에 가까울 것 같다. 실제 남한산성은 역사상 단 한번도 점령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도 인조가 항복해 제 발로 걸어나간 것이지, 청군이 산성 안으로 진입하지는 못했다.
남한산성은 둘레가 약 8키로 정도인데, 성벽을 따라 한바뀌 돌면 3시간 정도 걸린다. 등산을 한두 달에 한번 정도 하는 사람들에게 딱 적합한 코스다. 1년에 한두번 하는 등산객의 경우 다소 힘이 들 것 같다. 가을철에 오면 단풍이 좋은데, 여름철엔 땡볕에 노출된 구간이 있어 좀 힘들다.
남문에서 2-30분 걸으니, 수어장대에 도착한다. 수어장대는 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장대에 서면, 산성 내,외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래서 전쟁 때 지휘소로 사용됐다.
수어장대 옆에 청량당이 있는데, 이회 장군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다. 사연이 있다. 이회는 남한산성을 쌓을 때 동남쪽 축성의 책임자였는데, 공사비를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참형을 당했다. 그의 부인은 한강에 몸을 던져 따라 죽었다. 이회는 죽을 때 자신이 죄가 없으면, 매 한 마리가 날아올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가 죽을때 매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죽음을 지켜 보았다고 한다. 그 매가 앉은 바위가 수어장대 앞마당에 있다. 그런데 나중에 이회가 맡은 구간이 가장 튼튼하게 잘 지어진 것으로 밝혀져, 그의 누명이 벗겨진 뒤, 사당을 지어 그의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대규모 국책사업엔 횡령과 거짓투서가 난무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수어장대에서 성벽을 따라 계속 걸으니 서문(우익문)이 나온다. 서울 남쪽과 동쪽이 한눈에 들어오는 뷰포인트다. 오늘은 날이 흐려 서울시내가 희미하게 보인다.
사진찍는 분들은 서문이 서울 남쪽에서 야경이 가장 멋진 곳이라고 한다. 실제 해질녘이면 사진기 든 분들이 많이 온다. 그 분들이 다 떠난 뒤에는 청춘 남녀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서문에서 성곽을 따라 계속 걸으니, 북문(전승문)이 나온다. 북문은 전승문으로 불리는데, 사연이 속 상한다.
병자호란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따라 군사 300여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군을 기습공격했는데, 되레 전멸당하고 말았다. 법화골 전투라고 이름붙여진, 이 전투가 남한산성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영화 <남한산성>에도 이 장면이 나온다. 전승문이라는 이름은 정조 때 증축하면서, 그 때의 참패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이름붙인 것이라 한다.
갑자기 비가 올 듯 하다. 오후 늦게 비 예보가 있었는데... 서둘러 산성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북문에서 성곽을 따라 계속 걸으면, 동문을 거쳐 남문으로 다시 갈 수 있다.
북문에서 마을 장터로 내려가는 길에 현절사가 있다. 현절사는 병자호란때 청에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다 심양에 끌려가 처형당한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삼학사를 모신 사당이다.
후에 척화파의 수장이었던 김상헌, 정온 선생까지 함께 모셨다.
마을 장터로 내려오니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려 한다. 서둘러 행궁을 보러 갔다. 남한산성 행궁은 종묘와 사직을 갖춘 유일한 임시수도였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이 행궁에 머물면서 47일간 항전했다. 행궁은 일제시대 때 크게 훼손 됐는데, 10여년전 복원한 것이다. 빗방울이 계속 굵어져, 더 이상의 산행을 포기하고 마을버스를 타고 산성역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치열한 논리 대결이 벌어진다.
내가 초등학교(나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닌 세대다) 다닐 때, 척화파는 충신이고, 주화파는 ‘약간 거시기 한 것 아니냐’는 이분법에 따라 배운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명분만 앞세워 전쟁을 초래해, 결과적으로 조선에 더 큰 피해를 가져오게 한 척화파보다 주화파의 헤아림이 더 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명분을 중시하는 성리학이 득세한 시대에 실리를 따지자는 주장은 자칫 명예를 더럽힐 수 있다. 그래서 성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선명성을 내세운 척화파들의 손가락질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명분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늘날의 관점, 아니 적어도 나의 눈에는, 그 기개와 충절은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척화파는 국제 정세에 무지했거나, 적어도 무모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스티밋에 자극적인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전쟁, 평화, 다운보팅...
논쟁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스티밋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꼭 같다. 스티밋의 가치가 올라가 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스티밋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동력이 자본 투입이냐, 경쟁력있는 콘텐츠냐 하는 논쟁은 아무 의미없는 말싸움이다. 그 둘 다 필요한 거다.
분명한 건, 스파가 많은 사람은 그가 지니고 있는 리스크에 비례해, 충분히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 논의해야 할 문제는 큐레이션 보상 비율이다. 지금 큐레이션 보상비율은 턱없이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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