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해지면 x을 싸도 사람들이 박수를 칠 거라더니 그런 경향은 갈수록 심해진다.
#1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내재적 관점, 외재적 관점 그것도 외재적 관점은 표현론적, 반영론적, 효용론적 구분까지 지어 가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 달갑지 않았다. 우리 마음대로 감상하고 싶은 취향도 침해가 되고 이왕 할꺼면
"작가가 당시에 어떤 마음으로 이것을 썼는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알아내야지"
감상법 여러 가지 만들어 놓고 이 중에 하나이든가, '이탈리안B.L.T+마요+스위트 칠리+아보카도'마냥 이 중에 여러가지 섞였겠지 뭐, 정도의 의도가 담긴 무책임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인이 된 분들의 의도를 단정 지을 수 없으니 살피려면 다양한 척도가 필요했음은 이해하고 있다.
#2
베스트 댓글만 읽고 "내 말이 이 말이야" 라는 느낌만 수 차례
수 천 번받아 온 아이들은 누군가의 발언이나 행실의 의미를 주최 측의 의도대로 파악한다.
그들(주최 측)이 만든 답지 중 자신의 입맛에 맞게 느껴지는 하나를 자발적으로 고르는 느낌으로 선택하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선한 의도까지 스스로 선물 받는다. 또는 유명인 당사자가 모호한 표현으로 추종자들의 상상력을 발동시키면 알아서 '집단 행동'을 시작한다. 이는 아주 흔한 사회 현상이다.
취향과 개성이 다양해진 사회? 취향과 개성은 개인의 철학과 주관에 기반한 상상력에서 나온다. 남들이 긴 팔 입을 때 반 팔 입고 남들이 발목 양말 신을 때 축구 양말 신는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3
현재 유명인은 두 부류다. 화려한 인생의 이력을 자랑하며 스스로 애써서, 소위 유명해서 유명한 사람들과 소소한 활동이지만 꾸준히 그리고 애착을 가지고 하여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이들. (후자는 매체의 다변화가 만들어 주었으며 상당히 바람직하다.)
전자에겐 디테일과 반례가 없다. 전형적이라는 뜻이다.
대학원 시절 논문을 쓰며 교수님께 혼났다는 이야기도 왠지 당사자의 과한 학구열에 교수님이 그 것을 말리는 내용으로 혼냈을 것 같고(다 들어봐도 이야기가 실제로 그렇게 흐른다.) 늦잠을 자서 수업에 늦었던 이야기를 해도 관객은 아빠 미소로 흐믓하게 웃는다. (지각할 때 10초 때문에 학점이 깎이는 그 분노가 멘토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갑자기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건가) 연구소에 다니던 시절 에피소드들도 '직장 상사의 꼬장' 같은 건 등장하지 않으며 '좋은 회사니까 그런 것이 없었겠지'라는 아무 근거도 없는 추측을 관객이 알아서 한다. 사실 이건 다 의도된 연출이잖아..왜 전부 그렇게 좋게만 생각하는거야..이 바보들앙..
#4
강연에서 강조하던 불굴의 의지와 그 의지를 실천하는 자기계발서적 행동강령은 카드뉴스가 되어 나오고 그 방법의 실효성을 증명하듯 성공 사례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하고도 실패하는 사람들은 논외라는건가. 나는 그 모든 현상과 그들이 얻는 명성과 그들에 대한 신격화에 토를 한다 아니 반대한다. '수익금은 기부합니다.' 라는 말은 그들이 하는 '만들어진 삶' 홍보의 화룡점정이다.
#5
멘토를 가지고 싶으면 너처럼 찌질함과 게으름으로 무장 하였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고 너와 맥주 한 잔하고 함께 피씨방도 갈 수 있는 사람으로 정해라. 워렌 버핏과의 점심 식사도 아니고 그 것이 생업이 된 사람들이 어떻게 만인의 멘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팬 사인회도 다녀야 하고 강연도 해야 하는 멘토는 너의 멘토가 아니다. 그냥 셀럽이지. 그리고 사람의 근본과 성장 환경과 그 나아갈 길이 전부 제 각각인데 어떻게 하나의 멘토가 만인에게 제 역할을 해줄 수 있겠는가.
#6
배우고 싶으면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시작해라. 그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태라면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라.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책을 읽어라. 이 주문이 불가능한가? 그러면 멘토를 정해서 그에게는 무엇을 얻으려는건가?
그렇게 해서 배우고 공부하여 주위 사람이 당신 보고 성공했다고 하거든, 다시 주변에 혼자 힘으로 배울 수 없을만큼 부족하고 지친 사람을 찾아라. 그리고 나누어 주면 된다. 나는 유명인의 두 부류에서 전자가 되기에는 살짝 늦은 듯 하다. 더불어 "그 못난 이력을 극복하고 이렇게 훌륭하게 되었습니다."를 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지금 이 문단에 적은 것처럼 살아감이 꿈이다.
나같은 형신을 멘토로 삼아주는 몇몇 머저리들(
이 이미 있다..안타깝게도..)에게 앉은 뱅이를 업고 가는 장님의 마음으로 충고를 건내고 위로를 받으며, 함께 걷고 있을 뿐이다.
#7
나의 포스팅을 통한 넋두리는 시기와 질투에서 시작한다.
사실 솔직한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타인에 대한 교화'란 절대로 한 번에 천 명, 만 명에게 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그 것을 알만한 사람들의 미필적 고의에 화가 나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