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마이너였다. 마이너의 세상은 안전하다. 기대가 없기에 추락할 것이 없고 알아주지 않아도 그다지 억울할 것도 없다. 경쟁도 싸움도 없이 그저 조용히 존재하는 그 세계는 빛보다는 어둠에 가까운 그늘.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로 추방당할까 두려워하지. 반면 나는 늘 그 자리가 편안했다. 가끔씩 외로워도 괜찮았다. 마이너의 세상이란 적어도 내 모습 그대로 존재해도 누구하나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곳이니깐. 누구에게 억지로 맞출 필요도 사람에게 크게 데일 일도 없었다. 내 입맛에 딱 맞춘 1평짜리 좁은 원룸에 원하는 가구 몇 개를 배치하면 그 뿐, 내가 원하는 모든 일상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너무 오래 마이너 세상에 익숙해졌던 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친해진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키가 크고 밝고 애교가 많았다. 우리는 급 속도로 친해져서 비밀을 적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쉬는 시간마다 붙어 다니곤 했다. 나는 그 아이를 무척 좋아했다. 나와 달리 올망졸망 써 내려간 글씨체가 좋았고 날 볼 때마다 반가움을 표현하며 마주 잡는 그 손이 좋았고 긍정적이고 따뜻한 애정을 지닌 특유의 아우라를 사랑했다. 잘해줘서가 아니었다. 뭘 얻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밝고 건강한 그 사람 자체가 좋았다.
어느 날 받은 그 아이의 편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HJ는 키도 작고 쪼그만데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존경스러워."
그 고백에 쑥스러우면서도 그 아이가 주는 애정에 푹 빠져바렸다. 그러나 우리의 우정이 그다지 오래가진 못했다. 얼마 안 가 내게 심적으로 힘든 일이 생겼다. 어두워졌고 우울했다. 주변을 살 필 겨를이 없었다. 나는 고립되었고 모두와 멀어졌다. 그리고 학교를 한 달 반 정도 쉬게 되었다. 시험도 보지 않았다. 그 학교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당히 튀는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제법 유명해져 있었다. 내가 학교를 가지 않던 기간 그 아이의 편지가 불쑥 집으로 도착했다.
-잘 지내고 있니? 체육시간에 배드민턴을 해야 하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어. 우리는 여전해. 얼른 학교로 네가 돌아와줬으면 좋겠어.
일상적인 안부와 함께 걱정이 담긴 따뜻한 편지, 나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전해졌다. 고마웠다. 다시 학교에 다니고 일상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가 나를 생각하는 진심이란 내 생각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걔,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 난 그런 애들 잘 알아. 관심받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하는 사람.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밤새 울었다. 세상이 무너지던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 나의 개인적 고통을 '남들에게 관심 끌기'위한 행동으로 가볍게 치환시키는 그 악의적인 폭력성에 억울하고 화가 났다. 세상 어떤 미친 사람이 겨우 그 작은 관심받아보겠다고 그렇게 자기 삶을 내던진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내게 선택이란 게 있었다면 고작 그딴 관심 같은 거 받으려고 그 고통을 감내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내게 무관심하거나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면 그냥 그 아이가 날 안 좋아하게 됐다고 아프지만 넘길 수 있었을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내게 보낸 그 따뜻했던 편지에 담긴 이중성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소름돋았고 무서웠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 아이는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는 인간이라는 걸. 끊임없이 사람을 급으로 나누고 분류해서 자기에게 득이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입맛에 고르는 인간관계가 세상에 전부인 불쌍한 인간이란 걸. 그 아이는 내게 실망했을 뿐이다. 당차고 강한 줄 알던 내가 무너져 보통 사람 구실도 못하게 된 나에 대한 실망감. 자기에게 줄 수 있는 이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나를 버릴 구실과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다.
세상엔 그 아이처럼 그런 부류의 인간이 있다. 상상력이 없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 자기가 보는 방식 대로 타인도 세상을 인식할 것이라는 자만심 넘치는 편견에 갇혀있는 인간들. 남들은 다른 생각과 행동양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해조차 못한다.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버려 자기가 사는 세상이 최고이고 절대선인 줄 아는 무서울 정도로 오만한 인간들. 남의 선의와 호의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직성이 풀린다. 자기 안의 빈곤한 내면을 보지 못한 채 언제나 남 탓을 하기 위해 외부에서 비난할 핑계만 찾는 가련한 사람들.
그들은 상황이나 사람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않는다.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목격하면 부정하고 오역하기 시작한다. 이내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고 자기식대로 결론을 내리고나서야 직성이 풀린다. 그들에겐 그들에게 건네는 친절과 배려마저도 위선이고 거짓이다. 자신의 삐뚤어진 사고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온갖 편협한 증거를 수집하고 객관적인 척 포장하며 남들에 대한 험담을 자랑스럽게 퍼트린다. 그렇게 타인을 짓뭉개고 얻은 같잖은 우월감을 통해 얻은 그 쾌락에 중독되어 가겠지. 별 뜻 없는 사소한 행동까지도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도 않은 수단과 목적을 만들어낸 후 대단한 진실을 발견한 듯 자위를 해댄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인간적인 노력 같은 건 없다. 자기가 사는 지옥에 어떻게든 남까지 끌어내리길 바랄 뿐이다. 누군가가 아무 노력 없이도 행복해 보이고 너무 많이 얻어가는 게 배알이 꼴릴 따름이다.
정작 자기가 만든 거대한 환상 속에 갇혀 불행히도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게 본인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어리석은 악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혼자 현자인 듯 냉철한 척 자신을 뽐내기 바쁘다. 남의 불행을 위로하는 건 조금 쉬워도 남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응원해주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누군가를 바보로 만들고 비웃는 건 쉽다. 누군가의 약점을 발견하고 공격하고 냉소적으로 대하기는 참으로 쉽다. 타인에게 기쁨과 웃음 행복의 에너지를 주는 일이 훨씬 어렵다. 인간에게 애정을 갖고 세상에 친절한 편이 훨씬 어렵다.
그저 불쌍한 인간이다라고 생각하고 신경 끄면 될 뿐인데. 소심한 나는 그렇게 쿨하게 넘길 수가 없다. 인정한다. 나는 하수다. 그래서 이런 글까지 쓴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런건 열받긴 하지만 크게 상관없다. 지금 이 더러운 감정과 분노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 것이니 괜찮다. 그런데 내가 진짜 열 받는 건 꼭 그런 인간들 때문에 정작 좋은 사람은 그곳을 다 떠난다는 것이다. 결국엔 그런 편협한 인간들만 남고 정작 타인을 배려하고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만이 상처 입고 다시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필요가 없고 응원해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세상엔 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는 것도 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생각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언제나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관심도 보팅도 필요 없으니 나한테 관심 없으면 그냥 조용히 꺼져주면 좋겠다. 싫다면 서로 안 보고 무관심하고 살면 될 일인데 그것조차 못하는 그 끝없고 깊은 악의에 진저리가 난다. 내 마이너한 세상에 발 좀 들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냥 스팀잇에 스스로 마음이 조금 닫혀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왜 떠나야 해. 그냥 살던 대로 글 쓰고 싶으면 글 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던대로 놀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에 마음을 쓰지 않길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