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드러내는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감정은 대부분 잊힌다. 강렬했던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사라지기 마련이다 (물론 때로는 나를 놔주지 않는 감정이 있긴 하다) 감정은 사적이고 상대적이다.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감정은 영원히 내 마음속 비밀처럼 간직할 수 있다. 누군가는 그냥 그렇게 감정을 마음에 담아두기를 선호하고 다른 이는 꼭 표현하길 원한다. 어쩌면 사람을 만나는 건 감정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일, 서로에게 드러낼 감정의 거리에 따라 그저 지인 혹은 친구나 연인 같은 특별한 관계로 구분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는 어디쯤일까? 그 지점은 서로 합의될 수 있는 걸까? 오늘은 감정의 거리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울했다. 아니 우울한지도 몰랐다.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다.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았다. 혼자 고립된다. 어느 날인가 나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쯤 병원에 가게 되었다. 약을 먹고 상담을 하면서 우울한 감정은 많이 사라졌다. 그때 배웠다. '감정은 표현하는 거구나.' 해결되는 게 없어도 말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위안이 되는 거구나. 나는 내 감정을 억압하지 않기로 했다. 관심을 가지고 알아주고 나누고 공감하면 괜찮아지는 경험을 했고 내게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무렵 첫사랑을 했다. 그는 내 연애의 기준점이 되었다. 우리 사랑에 연애 감정이 3 정도라면 서로를 보듬어주는 마음이 7 정도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는 내 아빠가 되어줬던 것 같다.
나는 세상 가장 견고해 보이는 가족이라는 관계조차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은 직후였다. '아, 엄마도 아빠도 나를 떠날 수가 있는 거구나. 당연한 게 아니구나.' 그게 어린 내겐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사람을 믿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는 그를 만났고 나의 애정 결핍 욕구를 빈틈없이 채워주었다. 나를 무조건 사랑해주었고 관계에 대한 불안한 내 마음에 확신을 주었다. 가족도 해줄 수 없는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다른 존재가 세상에 존재하는 거구나. 그래서 그에게 비밀 같은 건 없었다. 타인에게 말할 수 없는 가장 내밀한 감정도 그에겐 아무 부담 없이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있었다.
눈이 펑펑 오던 밤, 평소 20분쯤 걸리는 그 거리를 1시간쯤 걸어 눈사람이 된 상태로 그의 집에 도착했다. 연락도 없이 멋대로 찾아와 문을 두드린 채 멍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놀라 눈을 털고 이불을 덮어주며 말없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그. 우리 사이에 선이 없었다. 내 멋대로 굴어도 나를 책망하지 않았고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감정을 내뱉어도 놀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었다. 그의 모든 걸 알고 싶었고 나의 모든 걸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연인이 되면 그래도 되는 줄만 알았다. 아니 그래 줄 수 없다면 연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새내기 시절 풋풋한 연애를 했다. 동갑인 그 남자애는 동아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그는 날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좋아한다고 남자답게 고백했다. 우리는 곧 사귀게 되고 설레고 행복한 순간이 가득했다. 뭐랄까 그건 내 인생에서 드물게 존재하는 청춘 로맨스물 연애였다. 처음에는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갔다.
나의 요동치는 감정을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그때 지금보다도 더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에 늘 지배받고 있었다.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으니 오히려 내 마음은 불안해지고 감정의 동요가 생겨났다. 그리고 난 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남자애에게 내 부정적이고 어두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사귄 지 한 달 만에 나는 그 남자에게 장렬하게 차였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반수를 한다는 이유로 애매하게 내게 거리를 두는 그 남자에게 술 한 병을 마시고 전화해서 헤어지고 싶으면 제대로 말하라고 진상을 부리니 몹시 어렵게 그의 헤어지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무얼 잘못한 건지 그냥 이별이 슬펐을 따름이지.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해보니 그에게 참 미안한 게 많았다. 아마 그는 평범하게 데이트하고 가끔은 사소한 일로 투정을 부리고 질투도 하다가도 어느새 화해하고 같이 공부도 하는 그런 캠퍼스 생활을 함께할 발랄한 여자 친구를 기대했을 텐데.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세상 다 산 표정으로 죽는소리를 해대며 어쩌지 못하는 부정적이고 다크 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에게 표현하곤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새내기의 연애란 무릇 그런 것일 리 없었는데….
연인이라고 감정을 모두 표현해도 되는 건 아니었다. 스무 살의 나는 어리석게도 몰랐다. 나도 감당할 수 없는 내 감정을 타인에게 받아들이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건 참으로 이기적인 태도였다.
그렇게 나는 살아가면서 경험에 근거해 각자의 거리 설정을 하게 된다. 이 친구와는 여기까지, 저 친구와는 거기까지 우리가 서로 불편해지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적당한 감정의 거리를 재기 시작한다. 그 감정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내겐 더 친하고 특별하단 의미가 되었다.
내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네가 힘들 때 외로울 때 생각나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어.
과거에는 행복이나 즐거운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슬프고 우울하고 비관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친구라면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물론, 속상한 일이 있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친한 사람과의 대화는 도움이 된다. 그 일을 잊고 훌훌 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좀 더 근본적인 절망과 부정, 자기비하 같은 단단하고 무거운 감정은 타인의 행복까지 앗아가곤 했다. 그건 누가 뭐라 한다고 위로가 되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에 가닿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 냈고 그 사람과 그 감정이 조건화되어버려 만남을 피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상대의 감정에 지쳐 벽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나는 나로 인해 누군가가 그 벽을 보고 있을까 두려워졌다.
내 감정 하나 감당하기도 버거운데 사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루를 버티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답 없는 문제를 공유하며 괴롭히고 싶지 않게 되었다.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 있다. 어떤 감정은 표현하지 않고 묻어두는 게 좋을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가까운 사이에서도 자연스레 정리된 이후에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졌다.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게 정제된 감정을 조심스럽게 꺼내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었고 내가 이렇게 느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과거의 일로 만든 후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일이 많아졌다.
어쩌면 예전보다 감정을 드러내는 거리가 좀 더 멀어졌을지 모른다. 오히려 조금 거리를 두니 알겠다. 내가 책임져야 할 못난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받아주는 상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또 여전히 내게 말하기 어려운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 마지막으로 꼭 감정의 거리가 관계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척도가 아니라는 사실도.
여전히 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감정을 드러내도 될 만한 적당한 거리를 끊임없이 재고 있다.
[안녕, 감정] 시리즈
01 입장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