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고 뱉어낼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 밖에 없다는 것은 서러웠지만 이 곳 조차도 없었다면 갈 곳 조차 찾을 수 없어 너무도 외로웠을 것이다.
뱉어낸다고 해놓고선 초점을 잃은 듯 멍하니 하얀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어땠을까,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일 말했다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는 들지 않는다.
전부 꺼내놓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했다. 일일히 다 설명해야 알아주는 사이들라면 관계의 끈이 다 무슨 소용인가. 끈이 매달린 전화기에서 끈 없이도 통화하는 시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끈에 이끌려 가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 녀석이 보고싶다. 메달린 끈도 없고, 수신이 잡히지 않는 통신망 저 멀리 있어도 우리는 대화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고, 그 녀석도 그러할 것이다. 수신자를 부담되게 하는 통보는 없었을 것이며, 언젠가는 발신자의 통화가 오리라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끈은 그래서 더 두껍다.
사정에도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을까. 나의 사정은 이러이러해서 무거운데, 너의 사정은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에 물구나무를 선 것 같이 달아올랐다. 무겁다고도 하지 않았으며 가볍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 더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상대방은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닌데 달아오르는 내 자신이 서글펐다. 서글플 자격만 갖췄구나하는 것이 더 서글펐다. 결국 나 때문에 서글펐다.
뱉어내는 것에도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말 할 자격이 필요한 무리에 속해 있는 것일까. 내 할 말만 해버리고 단톡방을 나오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중에도 없는 니들끼리 잘 살아라 말하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나에게는 다양한 높낮이의 담이, 각양각색의 모양을 갖춘 문이 존재했다. 어느순간부터 그러했다. 그 순간을 전후로 앞에 만난 이는 담을 넘을 필요도 문을 열 열쇠도 필요치 않았지만 뒤로 만난 이들에겐 엄격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틀은 갖춰줬으면 했다. 배배꼬인 문지기는 그래서 담아 낼 속이 좁다.
문지기는 오늘 노크도 없이 들어온 이들에게 당황하고 내 안으로 들어와 저희들끼리 떠들며 모든 것은 정해졌으니 너는 따라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화가나 모두 내쫓고 문을 꽝 닫고는 그 소리에 놀라 혼자 서운하고 아무도 없음에 외로워서 몰래 파둔 창문에 대고 말을 한다.
그 창문은 그들이 모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