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게임을 멀리한지 꽤 오래되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게임을 즐겼었다. 특히나 좋아했던 게임은 RPG 장르였는데 “레벨” 올리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꼭 RPG가 아니더라도 모든 게임에는 레벨이 존재한다. 그리고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 퀘스트 완료, 몬스터 사냥, 결투 등을 통해 경험치를 쌓을 수 있는데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레벨이 된다.
나를 비롯한 많은 게이머가 게임에서 설정된 만렙(최고 수준의 레벨)을 달성하기 위해 게임을 한다. 게임 내에서 레벨은 곧 나의 위치를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레벨이란 단순하게 숫자의 높낮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대한 애정, 열정, 숙달을 나타내기도 하고 잘하고 못함의 척도가 되거나 게임에 대한 헌신의 정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게이머들 사이에서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게임사에서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할 정도로 필수 조건이 된다.
레벨이 높을수록 게임상의 많은 제약조건이 상쇄되기도 한다. 보상이 좋은 퀘스트를 받을 수 있고, 경험치를 많이 얻는 사냥터를 누빌 수 있으며, 캐릭터를 더욱 강하게 해주는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게임을 잘해도 레벨 차이에서 오는 갭을 극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선 레벨 업에 치중하는 게이머들이 많다. 각자의 취향과 노하우에 따라 레벨 업을 하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공략집이 만들어진다.
레벨을 올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솔플(솔로 플레잉)과 파플(파티 플레잉). 솔플의 장점은 혼자서 경험치를 획득하기 때문에 레벨업이 빠르다는 것이지만 위험 부담이 크다. 반면에 파플은 파티원들과 경험치를 나눠 가지기 때문에 레벨업은 느리지만 안정적이다. 무엇보다도 파플은 부수적인 즐거움이 있다. 예를 들면, 힘을 합쳐 공략하기 힘든 퀘스트를 클리어하거나 몬스터를 사냥할 수도 있고, 자신들의 게임 노하우와 전략을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게다가 게임과는 별개로 파티원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어떨 때는 레벨 업을 하는 것보다 파티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즐거울 때가 많다. 비록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에서의 만남이지만 현실 세계의 무엇보다 소중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스팀잇에도 명성도라는 레벨이 존재한다. 저마다 열심히 글을 쓰고 보상을 받으면서 명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경우, 뉴비 딱지를 떼기 위해 55 명성도를 넘으려 했고, 환갑 이벤트를 진행하고 싶어서 60 명성도를 넘으려고 노력했다. 점점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러는 동안 크고 작은 모임들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명성도를 높이는 것보다 그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더 즐거웠다. 코인의 시세를 떠나, 좋은 글 여부를 떠나, 그냥 사는 이야기,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가끔 그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명성도가 낮고, 팔로우와 보상이 적은 나를 보면서 “언젠가 저들보다 명성도가 높아 질 테다.” 라며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면서 열심히 글을 쓰기도 했다. 부지런히 노력하면 금세 나란히 서서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좀처럼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론상으로는 레벨이 높을수록 다음 레벨로 올라가기가 힘들어 어느 수준에서는 비슷해지기 마련이지만, 터보엔진이라도 단 듯 야속하게도 달아나 버리는 밋님들 덕분에 차이를 줄이기는커녕 꽁무니를 쫓아가기에도 벅찼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1일 1포를 외치며 열심히 내 글만 썼다. 밋님의 포스팅에 댓글 폭탄을 날리며 희희낙락하던 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내달리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앞서 가던 사람, 나란히 장단 맞추던 사람, 뒤 쫓아 오던 사람, 이제는 몇 없다. 온라인 세상보다는 현실에 충실히 하려고... 예전만큼 재미가 없어서... 딱히 벌이가 안 돼서... 누군가와 다툼이 있어서... 각양각색의 이유로 이곳을 떠났다. 이제 그들은 없고 명성도만 덩그러니 남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레벨 따위 상관없으니 예전처럼, 멀찍이 앞장서서 달려가 줬으면 하고...
참여부분 : 수필
참가자 : @epitt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