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린아이 마냥 색칠공부를 하고 있어서 그에 대한 포스팅을 하려고 했다. 그러다 문득 내 언저리에서 미세하게 나를 신경쓰이게 만들었던 그림에 대한 지나간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특별한 색의 조합을 즐긴다. 하지만, 직접 그려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거나, 비전문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더라도 가끔은 노트에 낙서차원의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가끔 그 조차도 약간의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면 뭔가가 해소될 것 같은 무한한 동경이 있다. 스트레스와 동경의 사이에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해 갖게 된 마음은 '애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애증의 시작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만 다니다가 하루 미술학원을 간 적이 있었다. 정확히 왜 그 하루가 주어졌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체험처럼 학원에서 행사를 하는데 엄마가 나를 그리로 보냈던 것 같다. 크레파스로 뭔가를 그렸고, 그 위에 까만 크레파스를 덮었다. 이쑤시개같은 걸 주면서 또 그걸로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난 물감을 가지고 놀고 싶었고, 크레파스로 스케치북을 깜지로 만드는게 체감상 몇 시간이 걸렸다. 학원은 추웠고, 콧물이 나는 것도 같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한번의 경험은 미술학원에 뒤도 돌아보지 않게 해주었다.
디자이너가 될거라고 생각해서 일러스트를 그려보기 위해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내 꿈을 위해 뭔가를 그린다는 건 나 스스로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즐긴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한다는 내 자신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지 그리는 행위 자체를 즐긴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림은 엉망진창이었다.
창의적인 무언가를 원했고, 그 창의성은 각자에게 다른 형태로 주어진다. 하지만, 그걸 몰랐고 그림은 창의성이고 창의성은 그림인 줄로만 알았다.
더욱 깊어진 애증
대학에 들어가 전공수업을 들으면서 조금씩 애증이 깊어졌다. 마케팅이나 산업관련 분석 리포트를 제출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나 스스로 잘했다고 느꼈으며, 교수님이 '이거 정말 니가 혼자 한거 맞아?'라고 물어보는 질문에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일러스트를 그리는 수업은 완전 그 반대였다. 전공이 아닌 사람이 남의 전공을 듣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나와 친한 친구들 중에는 예고를 나온 친구도 있었고, 미대를 가려다 방향을 선회하여 온 친구도 있었다. 일러스트 수업을 반기고 즐거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고, 나보다 월등한 것이 분명했다.
그 친한 친구 중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와 1년간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그림은 나를 괴롭혔다. 그곳은 유학생들은 제외였지만, 본과생들은 그림으로 시험을 쳐서 들어오는 시스템을 가진 학교였다. 그림을 못그리고 싫어했는데 그 중에서 돋보적으로 싫어하던 눈코입을 그리는 과제들이 나를 괴롭혔다. 친구는 정말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면 일어날 줄 모르는 집중력을 발휘해 몇십명을 그려냈다. 그리고 교수님은 '너 지금 당장 취업해도 되겠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나에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아무말도 안해준 것에 감사하다.
졸업을 했고,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의 그림은 다분히 기계적인 도식화였다. 그것조차도 내게는 애증의 그림이라는 영역으로 돌아왔다. 물론 염증나는 조직문화가 그곳을 떠나게된 계기의 90% 이상을 차지하지만, 그림도 일말의 지분이 있다. 그렇게 나는 그곳을 떠났고, 그림과 영영 이별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기쁠 따름이었다.
무뜬금 색칠공부
그러던 어느 날.
프리랜서를 하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원래 시간이 많아지면 이거 좀 해볼까 저거 좀 해볼까하는 딴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프로젝트 일도 만만치 않게 힘들던 차에 즐겁게 좀 돈 벌 방법이 없을까를 아주 아마추어적인 접근으로 궁리할 때였다.
그림은 싫어했지만, 색칠하는 것을 좋아했다. 화분을 사서 아크릴 물감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화분은 왜 다 단색이지? 그런 생각으로 두세가지 색으로 화분을 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생각이었는지 웃음만 나온다. 하다가 순간 이건 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 또 그새 흥미를 잃었다.
불소소 팟캐스트를 위해 '기록자의 방'이라는 책을 독립서점 사이트에서 고르다가 컬러링 카드북을 발견했다. 일단 패키지에 눈길이 갔고, 괜히 갖고 싶었다. 주문을 했고, 교보문고에 가서 36색 색연필 세트를 샀다. 12색을 살까하다가 원하는 색이 없으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아 그냥 36색을 과감하게 집었다.
컬러링북이 처음으로 베스트셀러를 차지할 때 '아 저렇게 틀에 박히고 뻔한게 베스트셀러가 되다니..'라는 생각이었다. 자기가 그려서 색칠하면 되는데 남의 그린 그림에 색칠만 한다는게..도대체 무슨 힐링이 되나 싶었다.
그래, 내가 그 뻔한거 이제와서 하기 시작한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리게 될 일은 없을테다. 아마도 분명해 보인다. (확신) 그렇지만, 모든 것을 내가 즐거운 것에 쏟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학습하려하는 자세를 취할 수록 사고는 딱딱해지는 것을 느낀다. 책도 학습적으로 읽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두 장째 색칠공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