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보면 이런 문단이 있다.
헤어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와 살아 있는 한 줄의 관으로 이어져있다 -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 관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작게 맥박이 뛰고, 따뜻한 혈액 같은 것이 둘의 영혼 사이를 미미하게 오가고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생체적인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관이 끊어질 날도 그리 머지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끊어져야 한다며, 둘 사이를 연결하는 그 가냘픈 라이프라인을 되도록 빨리 생명이 결여된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 관이 생명을 잃고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지면 날카로운 칼로 잘리는 아픔도 그만큼 견디기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유즈(주인공의 전 부인)에 대해 되도록 빨리, 되도록 많은 것을 잊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내 짐을 챙기러 갈 때 전화를 건 것이 다였다. 집에 두고 온 화구 일습이 필요했으니까. 그것이 헤어진 뒤 유즈와 나누었던 유일한 대화였고, 그 대화는 매우 짧았다.
요즘 기사단장 죽이기를 한 참 보고 있는데, 내용 중 일부분의 내용이다. 주인공이 헤어진 전 부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인데, 이 부분을 읽고서 참 사람의 관계에 대한 묘사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인상 깊었다.
스토리와 상관없이 이 한 문단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와
보이지 않은 관계의 영역을 그림 그리듯이 표현하고, 그 의미를 압축하고 있다.
작가가 묘사한 것 처럼, 우리는 누군가와 혈관 같은 한 줄의 관 혹은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그 관을 따라서 타인을 떠올리기도 하고, 보이지 않지만 함께 있음을 인식하고,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관은 관계의 따라서 굵어지기도 얇아지기도 한다. 더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할 수록 관은 굵어지고 상대방과 관계도 살아있는 맥박처럼 힘차게 뛸 것이다. 반대로, 서로가 뜸해지거나 서로 어긋난 감정은 관을 얇게 만들고 결국 끊어지게 될 것이다.
여러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 ‘관’은 유효한 것 같다. 때로는 집단안에서 서로의 오해라든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간의 다툼으로 인해 서로의 ‘관’들은 뒤엉켜버린다. 그렇게, 복잡하게 뒤엉킨 끈들은 팽팽해져서 결국 끊어지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내가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한 줄의 관’은 어떤 상태일까? 여전히 굵을까? 살아있는 맥락처럼 잘 뛰고 있을까? 아님 희미해져서 사라진 것도 모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