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an 이 달의 작가 공모 이벤트: 소설] 2001년 어느 날 어디서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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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분야 공모]

2001년 어느날 어디서 누군가

by dj-on-st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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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는 오늘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탄다.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가도 되지만, 버스 정류장이 집에 더 가깝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버스를 탄다. 그리고 제일 뒷 줄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본다. 밝은 버스 안에서 어두운 밖을 내다보기 위해 유리창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 집에 돌아가라고 어둠이 몰려와 재촉하지만 도시는 어둠에 쉽게 복종하지 않는다. 불이 환한 상점들, 지나가는 행인들, 늦은 밤에도 계속 춤추는 공기 인형... 진수는 그런 풍경을 바라본다. 때론 빠르게 지나가고 때론 멈추어 서 있기도 하는 버스 안에서 밖을 바라본다.

진수의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옆에는 오락실이 하나 있다. 진수는 오늘도 버스에서 내려 오락실에 들린다. 저녁이라기엔 너무 늦어버린 10시 반. 오락실은 한산하다. 몇 몇이 총을 쏘거나 무술을 겨루고 있을 뿐이다. 진수는 한쪽 구석에 있는 펌프로 향한다. '쿵쿵 창창 쿵쿵쿵 창창창' 진수가 좋아하는 스페이스A의 노래가 울려퍼지는데, 발 움직임은 병아리마냥 아장아장 한다. 매 순간 왼 발을 내야하나, 오른 발을 내야하나 고민하고 선택한다. 그래도 재밌다고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발을 내딛는다. 오늘은 레벨 4에 갈 수 있기를...

'잘 다녀왔니?'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달걀을 삶아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진수는 간단히 씻고, 삶은 달걀을 두어개 먹고, 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컴퓨터를 켠다. 드림위즈에 들어가서 이메일을 확인한다. 물론 별 게 없다. 뭐를 할까 잠시 망설이다 세이클럽에 들어가본다. 세이클럽에는 언제나처럼 수많은 대화방들이 열려있다. 제목들을 살펴본다.
'신림동 남자 2'
흠...
또다른 '신림동 남자 둘'
...
진수는 신림동은 뭐하는 동네길래 남자 둘이서 대화방에 있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진수에게 끌리는 대화방 방제가 없다. 어쩌면 지금은 어떤 제목이 붙어도 별로 안끌렸을 지 모른다. 진수는 어제 3시간 넘게 처음 만난 사람들과 문자로 떠들었는데, 오늘도 여기서 서성이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도 남는 건 허무함 뿐이다. 그럼 이제 가볼 곳은 아이러브스쿨 차례다.

아이러브스쿨에 들어가서 진수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간다. 거기 게시판에선 오늘도 이러 저러한 많은 얘기들이 오가고 있다. 낯 익은 이름도 있고, 전혀 기억 안나는 이름도 있다. 이름이 잘 기억 안나는 어떤 여자아이는 이미 결혼해서 애가 있단다. 세상에... 결혼이라니, 제대 후 막 복학한 진수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진수가 군대에 다녀온 사이, 세상이 많이 변했다. 펌프가 유행했다가 벌써 한 물 가버렸고, 학교 후배들은 당구장보다 피씨방에 더 자주간다. 아이러브스쿨을 통한 동창회는 꽤나 번창하는 모양이다. 진수는 이런 변화가 너무 낯설어 헤매고 있다. 후배들의 스타크래프트 실력을 따라잡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고, 이미 서로서로 친해져버린 동창회에는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진수는 6학년 2학기에 전학을 갔기에 이 학교에도 저 학교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진수 자신도 알고 있다. 들어가서 인사하고 친한 척 하면 그들도 반겨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잘 알고 있다. 진수 자신은 그런 성격이 못 된다는 것을.

아이러브스쿨의 쪽지함에 왠일로 쪽지가 하나 와 있다. '윤정이일까...?' 정말 윤정이였다.
윤정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윤정이가 여자 반장, 진수가 남자 반장. 같은 반장의 처지였지만 그렇다고 윤정이와 친한 건 아니었다. 진수는 하기 싫은 반장에 어쩌다가 당선되어 어거지로 하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과 노느라 바빴다. 진수가 기억하는 윤정이는 분홍색 안경을 쓴, 공부도 운동도 잘하던 씩씩한 아이였다. 그리고 어렸던 진수의 마음에 강렬히 남아있는 기억… 당시 어느 시험 후에, 15개 틀린 사람까지 상주는데 진수는 턱걸이 했다고, 상 받는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쉬는 시간 선생님이 윤정이에게 하시던 말씀을 우연히 옆에서 듣게 되었다. '윤정이는 이번에 5개나 틀려서 어머니가 안좋아하시겠네...'

"응 나 그때 그 윤정이 맞아. 내 안경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 뒤로 윤정이와 몇 번 더 쪽지를 주고 받았다. 윤정이는 이후 사춘기 때에 어떤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삼수 끝에 지금 대학 2학년이라고, 국민학교 당시에 자신은 뭐든 다 잘하려는 완벽주의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곤 이야기가 끊겼다.

'어쩌지... 한 번 만나자고 할까...'
진수는 고민하고 있었다. 만나자고 말 꺼내기엔 지금이 적기다. '그런데 뭐라고 그러지? 그냥 얼굴 한 번 보자고 할까? 막상 만나면 뭐하지? 아니 애초에 윤정이는 날 만날 생각이 있긴 한걸까? 만약 윤정이에게 남자친구가 이미 있다면?'

진수는 어쩐지 내키지가 않았다. 사실 진수가 윤정이에게 굳이 쪽지를 보낸 건 무슨 좋은 추억이 있거나 해서 그런게 아니었다. 아니, 추억이라면 있긴 있었구나. 그 강렬했던 기억. 진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저 확인하고 싶어서 연락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때 그렇게 공부 잘하던 그 아이가 지금은 뭐 하고 있는지를…

확인이라고 한다면 사실 진수가 정말 연락하고 싶은 것은 준희였다. 준희는 진수가 6학년 때 전학간 학교에서 같은 반이었다. 조용하고 참해보이는 준희와 6개월 새에 친해질 일은 없었다. 가끔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 준희를 다시 만난건, 아니 스쳐 지나간 건 그로부터 1년 정도 후였다.

어느 여름날 진수는 어머니 심부름으로 집 앞 구멍가게에 가서 라면을 사오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 앞을 나서는 데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다. 진수는 잠시 고민했으나, 불과 200미터도 안되는 거리기에 그냥 뛰어서 다녀오기로 했다. 라면을 사서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비도 오고, 뛰었기에 시야가 좁았다. 그렇게 아파트 입구까지 단번에 들어왔는데, 얼핏 내가 뛰던 길 옆에 누군가가 있었던 게 생각이 났다. 다홍색 우산을 쓰고, 단정한 외출복을 입은, 그녀는 준희 같았다. 확실치는 않다. 그냥 얼핏 봤을 뿐이다. 하지만 준희인 것 같다는 강렬한 느낌이 왔다. '왜? 어쩌다가? 거기서 뭐했던 거지?' 궁금했지만 차마 다시 나갈 수가 없었다. 비도 그렇고, 메리야스에 후줄근한 반바지를 입고 집에서 막 나온 모습으로는 준희앞에 서고싶지 않았다.

한참 후에 건너건너 듣기로 준희는 이사를 갔다고 한다. 이사갔다는 말을 듣고는, 진수는 그때 그 다홍색 우산을 쓴 그녀를 떠올렸다. '혹시 이사가기 전에 나를 한 번 보고싶어 왔던건가? ㅋㅋㅋ' 진수는 자기 중심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키득거렸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뜻밖의 곳에서 준희가 다시 찾아왔다. 진수가 남산으로 고등학교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모이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남산 중턱을 오르고 있었다. 길을 중심으로 오른편은 언덕, 왼편은 골짜기. 진수는 이렇게 경사가 가파른 곳에 차근차근 들어선 주택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횡단보도 앞에 버스가 섰는데, 같은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우르르 지나고 있었다. 다들 등교에 바쁜 아침시간, 둘 셋씩 짝지어 지나가는 학생들 사이로 준희가 보였다. 보자마자 진수는 준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진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버스는 출발했고, 학생들은 골목길 아래로 총총총 사라져갔다.

진수에게 두 번의 우연이 발생했다. 진수의 머리에 준희의 모습이 두 번 새겨졌다. 그것은 이제 진수에게 더 이상 우연이 아니었으며, 한 십 년 정도는 변함없을 기억이 되었다. 진수는 오늘도 아이러브스쿨에서 준희를 찾기 위해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세 번째의,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찾고 있다.

그렇게 진수는 밤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에도 진수는 학교에 가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오늘도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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