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심각하다는 뉴스기사 댓글에
요즘 젊은 것들 타령이 또 나왔다.
나 역시 철없을 때는
사회적 구조가 어떻든 개인이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아무리 어려워도 누군가는 명문대가고
누군가는 고시 합격하고 누군가는 공무원 되고
누군가는 대기업 외국기업 취직하는 거 아니냐고.
결국 경쟁에서 이기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사고방식은 굉장히 이기적이며
단편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인간사회라는 것은 나 혼자 잘 사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결국 나 혼자라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나만 잘 살고 남들이 못 살면 당장은 내가 살 것 같지만
그 영향이 자신에게 미치는 순간 전체적인 수준이 내려가게 된다.
사회적 문제의 정해란
상위권의 승자를 제외한 나머지 패자들은 어떻게 되는가로 귀결된다.
이 세상은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 살아남고
패자는 그대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패자들도 살아야 하고 승자와 더불어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 된다.
결국 패자의 문제는 당장은 그들의 문제로만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침내 승자의 문제로 전이된다.
분명 아무리 사회가 어려워도 누군가는 잘 먹고 잘 사는 게 맞다.
하지만 운 좋은 소수에 불과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나머지는 어쩌란 말인가.
물론 그런 말도 할 것이다.
정말 그들이 노력을 하는 자들이냐고.
하지만 그건 그들이 정말 모두 노력했을 때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할 때의 이야기다.
100명이 모두 노력해서 100명 모두 90점 이상을 맞는다 해도
결국 10명만 채용되는 구조라면 90명은 노력을 해도
실패를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청년실업, 아니, 이제는 청년이 아니라
중년까지 포함하게 되는 총체적 실업은
어찌 보면 불가역적인 사회현상일지도 모른다.
그것의 원인은 늘어난 수명의 문제와 더불어
여권신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사회 통념상 직업의 체계,
즉 일하는 시간과 연령 수입의 적정도는
수십세기 문명에 걸쳐 이루어진 것들이다.
물론 급격한 현대화에 따라 많이 달라진 점도 있으나,
어쨌건 최소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진 견고한 틀이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당장 평균 수명만 해도, 조부모세대와 부모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와도 달라질 것이다.
그 옛날의 평균 수명은 40세였다.
이게 근대에 와서 50-60세가 되었고
현대에는 80세가 넘었으며
앞으로 우리가 늙으면 100세가 평균이 될 지도 모른다.
그 오래전 옛날 직업은 40세 은퇴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남자는 15-20 세가 되면 직업전선에 뛰어들면서
아이를 낳았고 40세가 되면 할아버지가 되어 일을 하다 은퇴를 했다.
근대에 와서 늘어난 기준이 정년 60세다.
이것도 늘리고 늘려서 55세에서 60세로,
그러다 63세 65세, 이제는 70세를 넘어 75세로
늘리는 곳도 있을 정도다.
다시 말해, 그 옛날이었다면 은퇴를 했어야 되는 사람이
아직도 현업에서 정정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펜대 굴리는 일이니 3D니 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냥 수명이 늘고 건장한 사람들이 늘었다.
이게 바로 요즘 보이는,
노인은 일하고 청년은 노는 현상이다.
또한 옛날과는 다르게 요즘은 여자들도 일을 한다.
옛날에는 일하는 여자가 그리 없었다.
대부분 여자는 애초에 일을 안 하거나
결혼을 하면 전업주부가 되곤 했다.
요즘 시대에는 여자도 일을 한다.
옛날과 비교하자면 직업의 경쟁률이 2배로 높아진 셈이다.
그러니까, 원래 지금의 실업률은 10-20% 정도가 아니라
한 40-50%는 되어야 정상이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증대한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은
50% 정도로 충분하다. 그걸 그나마 필요 없는 사람들을
윗자리에 채우고 월급을 주면서 직장을 만들어주고 있다.
현재 통계상으로는 청년실업률 10.3%, 체감 실업률 23%라고 하는데,
실상 이것도 줄이고 줄인 것이겠으나,
그 줄인 것만으로도 오히려 원래에 비하면 굉장히 양호한 상태라는 거다.
이건 시간이 지나면 더 심각해진다.
수명은 더 늘어나게 되고,
노인과 여성에 더불어 로봇까지 가세하게 된다.
실업률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와중에도 경쟁을 하면
누군가는 좋은 직업을 갖겠으나,
지금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노력을 하고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말하고 싶은 거다.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정말로 파격적인 정책 밖에는 없다.
늘어난 수명과 늘어난 참여자들,
그들을 감안해서 일하는 시간도 줄이고
수당도 어느 정도는 줄이고,
그렇게 나눠 갖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은 늘어나는 것은 반겨도 줄어드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첫 연봉 2000만원 받다가 이게 조금씩 늘어나서
어느새 5000이 넘어가면 당연하다고 느끼겠으나,
그 5000에서 10%만 깎아서 실업자들과 나누자고 하면
생존권 투쟁이니 뭐니 하면서 난리가 난다.
지금 당장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도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니 근로시간 단축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일자리를 나누고자 함이다.
하지만 기득권자들은 그 양보가 뼈아프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좋은 말이지만,
그게 자신의 희생을 요한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나는 지금의 실업문제가 10년은 더 갈 거라고 본다.
이건 일본을 보면 된다.
정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전쟁 이후 베이비붐세대가
완급이 너무 심해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국사회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으나,
동시에 엄청난 무게로 발목을 잡고 있기도 하다.
원래는 그들이 은퇴하는 시기가 한참 전이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은퇴를 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정정하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현업이다.
그렇다고 멀쩡히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은퇴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서 인구 구조가 변하는 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그 다음은 인공지능과 로봇이다.
실업의 원인이 되고 구직자들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으나,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초기 개념을 잘 잡고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공공재로 개발하여
기본소득의 시발점으로 삼는다면
그것들은 인간의 경쟁자가 아닌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
어쨌건 지금의 실업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다.
이걸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 그 개인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더욱 괴로워진다.
그들은 시대의 희생자이며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휘말린 사람들이다.
결국 정부 정책이 아무리 좋아도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인구 문제든 기술 발전이든 시간이 해결해 주는 수밖에 없으니
직업이 없는 사람들은 한 10년간 괴로워도 버티는 수밖에 없다.
괴로운 시간을 버티면 결국 좋은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정부 정책은 그 사람들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