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개똥철학] 나는 내가 아니다

dakfn(63)
Published in
#kr
Words
414
Reading
2 min
9y
Listen to this post
~3 min

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자주 나오는 게 바로, 영혼을 기계에 복사해서 영생을 산다는 개념일 것이다. 아래 영화를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

movie_image.jpg

하지만 나는 매우 단순한 사유만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간단한 예를 들어, 내 체세포를 복제해서 인간이 만들어지면, 그건 과연 나일까? 이건 말할 것도 없다. 간단하게 일란성 쌍둥이를 생각하면 된다. 그 둘은 다르다.

거기에 대해 종교적인 사람들은 유전자가 같아도 영혼이 다르다는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영혼이 같다고 해도 그건 내가 아니다. 만일 평행우주를 이동해서, 다른 우주에 사는 나를 만나게 되면, 그는 나일까? 그래서, 그가 보고 듣는 것을 나도 느낄 수 있을까?

백 투더 퓨쳐 같은 영화에서야 그런 일이 생기면 우주가 폭발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스타트랙에 나왔던 에피소드처럼, 다른 차원의 나는 내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나라는 존재의 유일성은 간단히 정의가 된다. 시간과 공간적으로 유일해야 한다. 즉, 지금 이 순간, 바로 내가 위치한 장소에 있는 것만이 내가 된다. 즉,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이런 나의 영혼을 복사한다는 개념은 그래서 우습다. 내 체세포를 복사하면 내 쌍둥이 형제가 하나 만들어지는 것이지, 내가 새로 생기는 게 아니다. 그건 이미 내가 아니다. 이건 마치 하드 포크 같은 거다. 이더클래식에서 이더가 하드포크 되어 나왔지만 그 둘은 다른 코인이다. 내 체세포를 복제한다는 것은 나를 하드 포크한다는 것이고, 그건 이미 내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컴퓨터에 내 뇌를 복사한다고 해도, 그건 나의 전자적인 하드포크일 뿐, 내가 아니다. 그건 그냥 나의 과거를 토대로 하는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이 순간, 이 장소를 벗어나면 죽게 된다.

개념을 확대해보자. 그렇다면, 과거의 나는 어떨까? 타임머신을 타고 어제로 가서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그건 나일까? 아마도 아닐 거다. 그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의 두 사람일 거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나 역시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여기서 시공간의 미분으로 들어가 보자. 과거를 어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에서 매우 짧게, 찰나의 순간으로, 더 이상 분해되지 않을 짧은 시간의 과거의 나라고 해 보자. 그건 나일까? 위의 방식대로 구분하면 그건 내가 아니다.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매우 짧은, 아주 극한의 미래의 나 역시 내가 아닐 것이다. 결국 나라는 것은 이 짧은 시간에 이곳에 현존하는 나일 것인데, 문제는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는 것이다. 즉, 지금은 곧 과거이자 미래이다. 그렇게 되면 나라고 부르는 존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로 다른 존재고, 또 지금의 내가 된 미래의 나 역시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나라는 존재는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인 것이다. 또한 이것을 내가 아닌 세상 만물에 적용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 된다.

이 세상 만물은 고정된 것이 없고 매 순간 변한다. 이것은 경제에도 적용이 된다. 부동산 가치나 코인에도 적용이 된다. 그에 대한 내용은 나중에 다시 정리하도록 하겠다.

[새벽의 개똥철학] 나는 내가 아니다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