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속에 담긴 숨결
두 사람은
해 질 녘 더 환해지는 햇살처럼
26살 꽃띠에
인구 1만 명당 두세 명인
시스 ab형을 가진
희귀 혈액형 동호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세상 아픈 단어들부터 먼저 배워버린 두 사람
어릴 적 사고로 부모를 잃은 여자는
미국으로 입양이 되어 자라다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미혼모인 엄마에게 버려진 남자는
고아원에서 생활을 하다 독립을 한지
오래지 않은 시간이었을 때
만나 사랑을 키워가게 된 거랍니다
허기진 하늘 아래 둘 뿐이듯
그 남자와 여자는
이제는 서로를 깊이 의지한 채
세상사는 재미를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생에 아름다운 행복에 취해
하루 또 하루를 만들어가면서요
성당에서 올리는 결혼식에
푸른 하늘의 구름은 하객이 되었습니다
결혼 서약문에
“평생을 서로 아끼며 사랑하겠습니다”를
끝으로 신혼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야호! 우리 세상이야....”
“오빠!
이 행복이 영원하기를 기도드렸어.... “
“혜지야 고마워 내 앞에 나타나 줘서....”
이제
두 사람의 보금자리엔
따뜻한 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행복이 지나간 자리에
아픔은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중앙선 침범으로
마주 오든 차와 정면충돌하는 바람에
6개월의 병원 신세를 지고서야
신혼살림을 시작할 수 있었거든요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행복했었고 잃어버린 행복들을 다시
주어 담아가면서 하루를 열어갔습니다
둘이서 열심히 일을 한 덕분에
조그만 아파트도 마련하게 되었고
하나씩 하나씩 서로에 고마움도 느껴가면서
더도 말고 이대로만
이어지길 바래고 또 바랬습니다
“오빠... 어딨어”
“나 여기 있잖아”
“오빠가 안 보여.. “
그렇게 여자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안면 골절에 의한 시신경 손상으로
혈액공급에 문제가 되어
물체를 식별하지 못하면서
급기야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될 거라는
의사의 진단
“남편분께서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제 아내에겐 비밀로 해주세요
치료받으면 나아진다고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
바람도 머금을 수 없는
아픔을 숨겨야 하는 남편은
“치료 잘 받으면 괜찮질 거래,,"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속하지 않은 시간은
어찌 그리도 알고 찾아오는지
이제는 눈앞에 밥 조차도
인식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렀습니다
행복이 머물 자리도 없이
남편은 묵묵히 아내 손발이 되어 갔습니다
목욕도 시켜주고
머리도 말려주고
가만히 손톱도 잘라주면서
입에 들어가는
밥 한톨을 흐뭇한 사랑으로 바라보며
물 한잔을 먹인 뒤에야
뒤늦은 식사를 하는 남편
아내의 행복한 미소를 바라보며
두 손은 늘 함께 마주 잡은 채 잠들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두 사람의 이런 작은
행복조차도 허락하지 못하나 봅니다
얼마 전 몸이 안 좋아
병원을 찾은 남편에게 떨어진 병명은
“간암 4기”
아픔 위에 내려앉은 또 다른 아픔
“아니 몸이 이 정도 될 정도면
증상이 있었을 건데
왜 방치하셨어요.... “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
알지만
“그러면 나 때문에
아내가 힘들어지니까..... “
일상의 바퀴에서 밀려난 남편은
"네"라는 대답 말고는 할 수 있는 대답이
지금 생각나지 않습니다
수술 대신 홀로 남겨질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시간으로
남은 삶을 대신하려는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내를 불러
식탁에 마주 앉았습니다
“혜지야
지금부터 오빠가 하는 말 잘 들어
이제
너하고 사는 게 싫어졌어
헤어지고 싶어
그리고 나 다른 사람 생겼어
미안해......
마음 정리할 것도 있고 여행 좀 다녀올게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몰라
기다리지 말고 전화도 하지 마
받지 않을 거야,,,“
물들어 갈수록
불안해지는 게 사랑인가 봅니다
가지 말라는 말도 못 하는 아내는
1초라도 옆에 없으면 바보처럼
힘들어할 거면서
이별이 상처를 허락하라 하기에....
사랑이 상처를 감당하라 하기에,,,,,,
“그래 ,.. “.
그 말 밖엔 하지 못합니다
남편의 마음속에선
“너하고 사는 게 싫어졌다고...”
“다른 사람 생겼다고.....”
“이젠 너와 헤어지고 싶다고....”
그렇게
세 번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원망과 절규로 하루를 보내며
집안일도 병원 가는 일도
부딪히고 아파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고 있을 때
남편은
그저 오늘이 삶의 마지막 페이지로
마주하는 날이 아니길 기도하며
자신의 혈액을 체취해 줄기세포은행에
셀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다가오는 이별 앞에
눈물과 아픔을 하나씩
담아두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내가 한 달에 한번 보건소에 가는 날입니다
대문 앞에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남편
이제는 흰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익숙해진 모습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가던 아내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하고 띄엄거릴 때
성질 급한 트럭이 급출발을 합니다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조심해 혜지야..”.라고
부를 뻔 한 입을 틀어막은 채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보건소에 들어간 아내가
다시 나올 길 기다리는 남편의
머리 위로 소나기가가 쏟아집니다
황급히 편의점에서
우산을 싸가지고 나온 남편의 눈에
온 비를 다 맞으며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뛰어가 아내의 등 뒤에서
자신은 그 비를 다 맞은 채
아내에게 우산을 씌어주고 있는 남편
“어.. 이제 비가 그쳤네,,,,
우산에 부딪치는 빗줄기 소리에
이상하다 비는 오는 것 같은데..... “
(혜지야... 혜지야...
이런 널 두고 어떻게 가니.....)
이젠 더 이상 가을도 겨울도
다시 볼 수 없는 하늘을 원망하며
눈썹에 걸린
남편의 사랑은 눈물이 되어 흘렀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척
가방에서 짐을 풀던 남편이 내민
풍선을 보고선
“오빠 웬 풍선이야 “
“목이 아파 그러는데 하나만 불어줄래”
남편은
이제 하나하나 떠날 준비를 하려 합니다
자신의 빈자리를
홀로 채워갈 아내를 위해
점자로 적힌 스티커를 곳곳에 붙여가며
아내가 혼자 살아갈 수 있게
집안 곳곳을 마음으로 새겨놓고 있습니다
허기진 육신은
때 묻은 자리에 아쉬움으로 남겨두고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는 어둠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아픔을 눈물로 헹구고 나간
남편의 모습은 다시 볼수없었습니다
남편이 떠난 그 자리에는
혈액 보관증과
아내가 불어준
풍선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에
그 풍선을 넣어달라는 말과 함께........
“저 하늘나라에서도
너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 “
출처/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