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한 두개 빼먹은줄 알았는데 꽤 많이 안 썼다. 참 게으르다.
전역 후 조기 복학 신청을 했다. 싱숭생숭하다. 지금까지 사람들한테 '복학은 안 할 것 같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유는 더 놀고 싶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내가 하고싶은 일에 관한 지식들을 배우지 못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래퍼가 되고 싶고 음악을 하며 살고싶다. 근데 학교 과는 컴공이다. 학교 들어갈 때는 내가 음악을 할 지 전혀 몰랐다.
어릴 때 난 아빠랑 엄청 친했다. 아빠한테 여러가지 지식들도 배우고 아빠도 기술직이여서 나도 자연스레 공구, 과학 같은걸 좋아하게 됐다. 그렇게 프로그래머란 꿈을 가졌다. 고등학생 때도 래퍼란 꿈을 마음한켠에 두고있긴 했는데 프로그래머가 더 하고 싶었다. 대학교에 올라와서 동아리를 찾다가 뭐에 홀린듯 흑인음악 동아리라고 간판을 건 동아리 방으로 향했다. 가입 신청서를 내려고 들어간 동아리 방에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용수형, 찬우형, 동욱이형이 프리스타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참 신기한 운명이다.
그 뒤로 랩을 해보니 정말 재밌었다. 이건 꼭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도 안 하고 수업도 도망가며 매일 동아리 방으로 갔다. 이맘때쯤 집에서 아빠가 취업이나 프로그래머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면 말을 돌리거나 도망갔었다. 집에서 말을 하는 것이 줄어들었다. 난 음악이 하고싶었다. 매번 수업도 빠지고 랩을 하다보니 마주한건 두장의 학사경고장이었다.
학사경고장이 집으로 친절히 배달되고 아빠랑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티는 안 내려 했지만 화를 참고 말하는 것 처럼 보였다. 다른건 몰라도 졸업장만 따 놓으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고모네에 놀러갔을 때 아빠한테 음악이 하고싶다고 고백했다. 언제까지나 내 생각을 숨길 수 없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빠는 꽤 오랫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좀 흐른뒤 아빠가 꺼낸 말의 첫마디는 '지금 굉장히 떨리고 무섭다'였다.
나한텐 두 누나가 있는데 그 중 큰누나는 공부를 잘했다. 전형적인 모범생 케이스였고 좋은 대학에도 붙었다. 그러더니 대학에서 밴드부를 하고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물론 지금은 누나는 일도 하고 음악도 하며 멋있게 살고있다. 아빠는 음악하다가 계속 거기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당시 누나의 모습에서 나를 본 걸지도 모른다.
그런 아빠의 생각이 그때는, 그리고 최근까지도 이해가 안 됐다. 어찌됐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니까. 부모님이 조언은 해줄 수 있어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한번 받은 인생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아도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복학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아빠한테도 표현을 했었다.
전역 후 집에서 빈둥대며 생각을 해보니 나의 그런 생각들이 좀 바뀌기 시작했다.
일단 복학을 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사느니 학교라도 가자'라는 생각 때문이다. 요즘 일도 안하고 놀기만 하고 있다. 이건 저번에도 말한건데 음악을 하든, 게임을 하든, 뭘 하든 수입이 없으면 남들 눈에는 백수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돈 쓰는건 나름 찔려서 최대한 약속도 안 잡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다.
이렇게 게으르게 살아가니 좀 무서워지는게 있었다. 가끔 인터넷이나 TV에 나오는 30세, 40세 돼서도 부모님한테 얹혀사는 삶이 비단 남의 얘기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몸무게는 늘어가고 정신은 나태해진다. 아직 자각은 하고 있지만 이게 끝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학교라도 가보려는 것이다. 규칙적인 삶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 최소한 지금처럼 사는 것보다는 달라질 것이다.
또, 아빠가 원하는걸 하고싶어졌다. '내 인생은 내 인생'이라는 내 생각 자체가 바뀐건 아니다. 이건 내 인생이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원하는 인생을 일부로 피해갈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힘들긴 하겠지만 음악도 하고 학교도 다니면 되는 문제다. 그리고... 적어도 엄마 아빠가 건강하게 살아 계실 때는 보고싶은걸 보여드리는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문득 든 생각이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복학 신청은 하고 왔는데 참 걱정이 많아졌다. 이전 학사경고는 수업 자체를 안 나가서 받은거긴 한데 설령 수업을 들었다고해도 안 받았을거란 자신감이 없다. 자랑은 절대 아니고 공부를 진짜 못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시험 울렁증도 있다. 예전부터 그랬는데 평소에 잘 아는 것들도 누가 테스트한다하면 부담되고 긴장되고 말을 잘 못했다. 무대 공포증도 이것의 연장선인 것 같다.
조별과제도 문제다. 이게 제일 큰 문제다. 낯을 오지게 가린다. 군대가서 모르는 사람하고 대화도 많이 나누면서 그나마 좀 고쳤는데 내가 모르는 주제가 나오면 여전히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특히 조별과제는 나보다 똑똑이들하고 의견을 나눠야하지 않나.
무튼 요즘 주변 사람들한테 여기저기 자문을 구하고 있다. 다시 학교 다닐 생각하니 막막하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보면 다들 항상 화가 나있다. 저번에도 히오스를 하는데 게임 시작 후 '열심히 하자'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ㅗㅗ'였다. 익명이라서 그런가... 하긴 페이스북 안에서도 열 내며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있나 싶다. 박근혜 사퇴를 외칠 때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가 너무 어지럽다. 여혐과 남혐으로 남녀 진영을 나누어 싸우고 있고 빨갱이, 수꼴이란 말은 늘 나오는 말이고 스포츠에선 호퀴니 메퀴니, IT에선 앱등이 삼엽충, 음악에선 자기들이 듣는 아티스트를 모르면 음알못 힙찔이. 물론 민감한 문제들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다. 그걸 넋놓고 바라보라는건 아니다. 다들 조금만 진정했으면 좋겠다.
오늘 오랜만에 책을 샀다. 휴학하고 집 오는 길에 서점을 들렀다. 뭐 볼까 하다가 간만에 읽는 책이니 읽기 쉬운 히가시노 게이고 책으로 골랐다. <라플라스의 마녀>인데 나온지는 좀 됐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내 최애 작가다. 다른 훌륭한 작가들도 많지만 독서에 깊게 빠지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한테 더 애정이 간다. 추천작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용의자 X의 헌신>, <유성의 인연>. 근데 이거 포함해서 그냥 다 읽어보는걸 추천한다.
500피스짜리 퍼즐하나도 샀다. 그림은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난 미술을 잘 모른다. 그림 그리는건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작가는 따로 없고 그림을 볼 줄도 모른다. 고흐가 어떤 사람인줄도 자세히는 몰라서 미술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다. 근데 고흐 그림은 좋아한다. 고흐 특유의 붓터치와 색감을 보면 빠져들게 된다. 1000피스짜리 사고싶었는데 돈이 없었다. 이번 달 안까지 천천히 맞춰야지.
오늘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