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있냐고" 를 외치는 내 친구들과 격주로 술을 마신다.
강북에서 모일 때 애용하는 집이 종로3가역 낙원동 쪽 출구 근처의 < 행복한 전집> 이라는 술집이다.
보통 아줌마 두 분이 운영하는데 연말에는 아저씨가 나타나기도 한다.
집주인 아줌마는 내 나이 또래 쯤 되었는데 손님 다루는게 거침이 없다.
"깔테면 까봐 "의 막가파 출신이다.
이 막걸리 집 단골들은 전통적으로 형님뻘의 육십대가 주로 왔고 오십대는 젊은 축에 속했다. 그런데 이런 전통이 요즈음은 깨박살나고 있다.
여섯시 전후로 육십대는 자리를 떠나고 젊은 여자들이나 연인들이 몰려와서 막걸리나 맥주를 한 잔하고 간다.
주인 입장에서는 자리 회전율이 높은 젊은 층을 선호하니 막걸리 먹고 수다떨다 아줌마 눈치에 매상 못올리는 육십대는 떠나야하는거다. 조선시대부터 종로거리 인심은 야박했다.
그런데도 우리친구들이 이 집을 가는 이유는 제공하는 막걸리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다양한 집이기 때문이다.
과다한 음주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붙은 문간의 막걸리 메뉴판에 보이는 8종 이외의 막걸리도 제공하고 있다. 여우의 재치(?)를 가진 여주인은 막걸리를 구해 오는데 귀신이다. 나는 주로 태인에 있는 송명섭막걸리를 마신다.송명섭막걸리가 떨어질 즈음 요번에는 괴산 제일양조장의 생막걸리를 먹어보라고 권한다. 마셔보니 신선도가 훌륭해서 엄지척을 올려주니 "내가 막걸리 고르는데 선수야"하며 너스레를 떤다. 나는 속으로 이것도 한병에 오천원짜리라 제일 비싼거지하며 여우스러운 재치(?)를 인정한다.
막걸리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술이다. 포도주 점수를 매기는 로버트 파커 같은 황제가 막걸리세계에 는 없다.
식객만화에 나오는 덕산막걸리,
박정희 대통령이 마셨다는 배다리막걸리,
청와대 만찬에 쓰인 대강 소백산막걸리,
누룩만드는 TV다큐멘터리로 유명해진 부산 금정산막걸리,
양조장 역사가 백년이 넘었다는 지평막걸리,
지역의 특산물을 가미한 가평 잣막걸리,
부여의 알밤막걸리,
대강 소백산 콩막걸리,
괴산 옥수수 막걸리,
제주 백년초 막걸리 등등 종류도 엄청나다.
내가 막걸리를 고르는 기준은 재료, 누룩과 첨가물 사용여부, 도수, 출고날짜이다.
첫째, 막걸리의 재료인 쌀의 품질이 막걸리 맛을 좌우한다.
막걸리의 재료가 되는 쌀도 햅쌀이냐 묵은 쌀이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먹는 쌀의 60%는 김제와 부안 땅에서 나온다. 정부가 농민이 수매한 쌀이 농협창고에 묵은 해수에 따라 재료가격은 팍팍 떨어진다. 일년 단위로 육칠천원 정도 떨어진다. 쌀 가격이 더 싼 것도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베트남쌀이라는 인디카 종의 쌀은 일정량 수입해온다. 이걸 볶음밥이나 동남아식당에서 쓰기도 하지만 주사용처는 양조장이다. 햅쌀의 반 가격이하로 살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이다. 양조장이은 이 쌀을 써야 이윤이 더 남는다. 그래서 송명섭막걸리와 서울장수막걸리의 가격이 술집에서 차이가 나는거다. 인디카 종 쌀은 아밀로스(쌀 전분)이 20~25%로 자포니카종인 우리나라 쌀 품종 17~20%에 비해 전분이 높다. 그래서 효모로 발효시키면 알코올이 더 생산된다. 그런데 막걸리 도수를 6%에 맞추려면 물로 더 써서 희석해야 한다. 송명섭막걸리의 묵직한 바디감과 서울장수막걸리의 가벼운 상쾌함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난다. 참고로 밥맛은 16%정도의 아밀로스에 7%이하의 단백질이 포함된 품종인 일품벼나 고시히까리 품종 등등이 제일 좋다. 단백질이 높으면 소화가 덜 되는 느낌이 있어서 품질이 낮게 친다.
둘째, 누룩을 양조장에서 만드는가도 맛을 좌우한다.
금정산막걸리 등 전통막걸리들은 누룩을 자체 제작하여 막걸리맛이 개성이 강하다.
셋째, 첨가물의 여부이다.
달달한 맛을내는 아스파탐에 의해 막걸리의 달달함이 다르다.
송명섭막걸리는 아스파탐을 전혀 쓰지 않아서 쌉사름한 맛을 낸다.
지평막걸리가 너무 달달한 것도 아스파탐을 좀 더 쓰기 때문이다.
넷째, 막걸리의 도수는 보통 6%이다.
그런데 금정산막걸리만 8%이다. 금정산막걸리는 좀 마시다보면 취해버린다.
도수 센 막걸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출고날짜에 따른 숙성도가 막걸리의 맛을 제일 좌우한다.
덜 익으면 밍밍하고 푹 익으면 시큼해지니 출고한지 사나흘에서 5일이 마시기 적당하다. 물론 여름에는 술집이나 마트 냉장고 성능이 출고날짜보다 백배 중요할 때도 있다. 배상면주가에서 하는 막걸리집에서는 봄,여름, 가을로 숙성정도를 구분해서 막걸리를 내온다. 나도 단골막걸리집에 가면 냉장고에서 출고날짜보고 직접 꺼내온다.
막걸리의 주재료에 특산물이 가미되면 막걸리의 종류는 훨씬 다양해진다.
막걸리에 칵테일도 가능하다.
막걸리의 맛은 누구랑 어디서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도 있다.
여하튼 비싸야 한 병에 오천원인 막걸리를 누가 산 들 맛이 없겠냐?
나중에 전철에서 막걸리 냄새 안풍기면 되는걸!
이번 불금에도 나는 인생 뭐 있냐며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실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