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2 착각의 늪
경부고속도로는 텅비어 있었고 시원한 새벽공기는 내가 탄 애마의 질주 본
능을 마구 채찍질 하고 있었다.그래 나 경마 좀 했다 어쩔래? 집 한 채 날려
먹었다.뭐 어쩔거냐고.
게임동호회에서 만난 '맥가이버'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바로 문제였다. 이
인간이 아는 사람 중에 마방을 운영하는 마주 한명이 있었다.근데 그 마주
가 키우고 있는 말이 맨날 꼴찌만 하고 우승을 단 한번도 못해서 마주랑 말
이랑 말타는 기사랑 셋이 세트로 굶어 죽게 생겼는데 이 안타까운 사연을 듣
고 마주들끼리 협의를 거쳐서 이번에 한번 우승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참으로 인간미 폴폴 나는 아름다운 광경 아니겠는가.맥가이버가 전해준 휴
머니즘에 감동먹어서 나는 단승식 쌍승식 할거없이 있는대로다 쏟아부었다.
결과는..
니미 말짱 꽝이었다. 꼴찌 말은 초반부터 허거덕거리며 헤매더니 줄기차게
꼴지를 놓치지 않았다. 2백만원이 경마장의 뿌연 먼지 속으로 사라지고 마
는 순간이었다. 총으로 말새끼랑 마주새끼랑 기사새끼랑 다 쏴죽이는 연쇄
살인 충동을 느꼈다.
'이번엔 진짜야..저번엔 마사회에서 잠시 검열이 있었대..'그럴듯한 꼬임에
넘어가 피같은 백만원을 또 날렸다.가위,바위,보를 해도 세번은 한다. 인생
삼세판 아니겠는가.이번 맥가이버의 꼬임은 더욱 과간이었다.
'야야 이번엔 마사회 과장이 마주들 회의에서 직접 들은 얘기래..꼴지 말을
이번엔 진짜로 우승시킨대. 다른 말들한테 쥐약을 먹여서라도 기필코 우승
시킨대..'
속은 내가 미친놈이지.돈 백을 또 날렸다.택시질 해서 사백만원을 벌려면
대체 몇탕을 뛰어야 할까? 백탕? 천탕? 쓸데없이 기억력을 발휘하는 바람
에 열만 더 받았다. 신경질적으로 엑셀을 밟아 제꼈다.
"부웅,부아아아앙.."
-약 20분 후
이미 서울을 벗어나 신갈부근에 총알처럼 와 있었다. 말 그대로 내가 모는
차는 총알택시 였다. 매일 12만원씩 회사에 꼬박꼬박 입금해야하는 도급
택시라 시간은 곧 돈이었다. 돈은 곧 시간이 되고. 맞나?
아무튼 부산까지 갔다오려면 이빠이 밟아야한다. 그런데 장매물이 하나 있
었다.
바로 감시카메라.곳곳에 세워진 감시 카메라가 눈알을 부라리며 째려보고
있다. 당연히 비책을 세워놓았다.놈의 살벌한 눈을 피할 수 있게 차넘버를
뒤로 살짝 기울일 수 있는 나의 총알택시는 화약냄새를 풍기며 시속170k
m로 쾌속질주 중이었다.얍실하지만 어쩔수 없다.먹고 살려면.그리고 나만
그런가. 다들 그렇게 하는데 뭐..
엔진은 굉음을 토해내고 있었고 엄청난 속도때문에 시야는 점점 좁아져서
아차하는 순간 골로 갈 수도 있었다. 아찔아찔했다. 나도 모르게 수도꼭지
에서 누런 오줌이 찔끔찔끔 흘러 나왔다.
(내가 이럴정도면 뒤에 있는 이상한 케릭터는 바지에 똥 좀 지리겠지.)
룸미러를 통해 본 그녀는 담배 한 개비를 꽂아 물고 있었다. 마치 제집
안방에 있는 것처럼 아주 편안해 보인다. 심지어 우아해 보이기까지 한다.
누가봐도 쫄아있는 형국은 아니었다.더군다나 지금의 이 살인적인 스피드
를 마치 비웃기라도하듯 도넛모양의 담배연기를 앞자석으로 길게 내뿜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었다. 이역시 우아해 보였다.
숨 쉴때마다 그녀의 담배연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도넛을 콧구녕
으로 빨아 먹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이게 다 그녀의 우아함 때문이었다.
얼굴이 예쁘기 때문에 이런 우아함도 생기는 거였다.
"담배를 도넛처럼 맛나게 피우시네요.콜록 빵가게에서 일하시나봐여?콜록."
"..."
어색함을 없애려고 던진말에 침묵하는 그녀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가 또
이상한 개그를 한 것 같았다.
(내가 뭐 개그맨이냐? 어떻게 맨날 웃기냐?)
"저기, 아저씨.."
"네? 왜요?"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아까 빛의 속도로 쏘란말 이후로 몇시간만에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 같은데.얼굴도 낯설지가 않고.혹시 대딸방에서 만
났나. 이상하네 최근엔 돈 없어서 안 갔는데.분명 첨보는 얼굴은 아니야.)
하긴뭐 내가 주로 근무하는 강남일대에서는 예쁜애들 얼굴이 거의 다 비슷비
슷하다. 선호하는 얼굴형이 비슷하고 얼굴을 같은 성형외과에서 고쳤기 때문
이었다.그래서 거긴 중학생부터 70노인네까지 여자들 얼굴이 전부 비슷하다.
(맞아 내가 저 도너츠를 알리가 없지.알았다면 설탕찍어서 진작 먹어치웠겠지.)
"아저씨 참 재미있는 분이시네요.오늘부터 우리사귈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