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
로 대하지 않습니다
동물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항상 '그래도 사람이
먼저 아니냐는 반응을 불러오는 것 같다. 이것은
인권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동물권이
웬 말이냐'는 식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나는 사람에 관한 어떤 일들이 견디기 힘들다. 이
를테면 전 세계 아동 노동자가 1 억 7천만명이고,
그 가운데 가혹한 착취를 당하는 아동 노예가 우
리나라 인구의 두배인 8,500만명이라는 통계 같
은 것들, 그리고 내가 소비하는 식품, 커피, 옷 등
이 이런 노동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사실 같은 것
들.
나는 동물을 존중하는 일과 인간을 존중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 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혀 연관성 없이 들릴 수도 있
지만 나는사람도 힘든데 왜 동물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라는 물음에서 칸트가 정의한 인간을 떠올
린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아니다. 존재 자체가 목적이다. 이 세상
에 수단으로 이용되 어도 괜찮은 인간은 하나도 없
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인간이 수단으
로 취급되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대기업의 하청
노동자는 물건을 만들다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병
으로 사망한다. 안전장치도 없이 불안한 난간에 매
달려 에어컨을 고치 던 수리 기사는 추락사한다. 컵
라면을 먹을 시간도 없이 홀로 스크린 도어를 수리
하던 청년은 전동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다. 이 모
든 사건 뒤에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목숨을 저당 잡혀 밥벌이를 해야 하는
또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뿐이다. 이 모든 일은 인
가을 수단으로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우
울한 자화상이 다.
모든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정언 명령
은 우리가 추구할 가치와 진보할 방향을 보여준다
힘 있는 자의 목적에 힘없는 자가 수단으로 이용당
하는 사회, 수단으로서의 쓸모마저 없어지면 버림
받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리고 "약자의 최전선
에 동물이 있다”.
이 사회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실제로나 인식으
로나 완전한 도구, 수단, 물건이다. 수단으로서의
쓸모가 없어지면 학대와 방치의 대상이 되는 일도
흔하다. 이 것은 수단의 사회에 사는 인간이 또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 그중에서 도 약자를 대하는
태도와 흡사하다.
사실 칸트는 이성을 가진 존재, 인간만이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선을 그음으로써 동물은 도덕의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칸트는 동물을 잔혹하게 대
하는 데 반대했지만 그건은 오로지 동물에게 잔인
한 사람은 같은 인간에게도 잔인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칸트의 저 유명한 명제를 빌려 동물
을 수단으로만 여겨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
성을 잃는 건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철학
자들이 권리, 평등 같은 원칙을 인간의 특권이라
고 생각했다. 오직 인간만이 가치 있다고 여겨온
역사는 동물권의 출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뿌리 깊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특정 집
단이 독점하던 권리를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사람
들이 오랫동안 당연시해왔던 이데올로기를 비판
적으로 검토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은퇴 후 독일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산책 봉사를 하는 봉사자의 모
습 ⓒ팅커벨 프로젝트
한 사회 안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와 동물을 존
중하는 태도는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모든 존
재가 목적이라는 인식과 모든 생명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의 주류가 될 때, 우리는 비로
소 목적의 인간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
는다. 인권 수준이 높고 권리와 복지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들이 동물권과 동물복지를 실현하고 있
는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인권과 동물권은 양자택
일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상관관계다. 마하트마
간디가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에
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고 말한 것
은 그런 의미다.
(...)
어떤 사람들은 동물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로 우
리와의 공통점을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동물의
지능과 능력을 말한다. 실제로 동물은 우리와 많이
닮았고 어떤 면에선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점을 철저하게 무
시해왔다. 심지어 인간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동물의 능력을 이용할 때조차 그랬다 인간의 열등
함을 인정하는 대신 그들의 능력을 본능이나 습성
으로 치부했고, 많은 경우 인간우월주의를 부각하
기 위해 인간과 동물을 비교해왔다
따라서 동물이 인간과 얼마나 비슷한지, 또 얼마
나 뛰어난지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공통점과 우월함이 그들이 존중받
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나와
당신이 다르다 해도 당신은 존중받아야 한다. 당신
이 나보다 어떤 면에서 뛰어나지 못하다 해도 당신
은 존중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동물 또한 고통을
느끼는 생명이라는 사실만으로 다른 조건 없이 고
통을 피하고 학대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우리는 모든 동물 앞에서 강자다. 코끼리 나 호랑이
같은 동물도 인간이 지배자를 자처하는 세상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우리 모두는 같은 인
간들 앞에서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다. 동물을 생
각하는 일은 약자를,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
는 결심으로 이어지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모순
에 눈뜨게 된다. 동물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고 해
서, 또 동물의 고통에 반대한다고 해서, 실천주의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어려운 이유
는 동물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반
대로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절대다수의 사
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거의 모든 행위가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이, 동물의
고통과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