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스팀잇의 창창입니다. 연말이다 새해다 뭐다해서 딱2일 글을 안썻는데,뭔가 흐름이깨진 느낌이네요.어쨋든 지난번에 못다한 카불쳐 이야기 그리고 시드니까지 이제 시작합니다.그리고 카불쳐이야기는 에피소드형식으로 써볼까 합니다.
1.카불쳐에서의 유일한 룸메이트
카불쳐에서의 3주라는 애매한기간 동안 저는 한집 한방에서 머물렀는데요,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룸메이트없이 혼자 지냈는데 딱 3일 룸메이트랑 같이 지낸적이 있는데 그 동생이 제가 호주에서 만난 유일한 미필 워홀러 였습니다.
같이 지낸기간이 얼마되지않아 많은얘기는 나누지 못했지만,그 동안 군대라는것이 얼마나 한국남자의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깨달았습니다.
뭐 군대를 갔다오지 않았다고 미성숙하거나 나쁘다고 말하는건 아닙니다.하지만 전역을 하고 나면 뭔가가 달라집니다.
이게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말이죠.
그런데 솔직히 그 친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냥 '불쌍하다 나이 더 먹고가면 고생할텐데 어쩌지...' 이 생각 밖에 안들었습니다.
2일째 같이 컷팅을하고 농장일은 자기랑 안맞는것 같다며 시티로 이사를 가버렸었는데,그 이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만약 지금까지 있었다면 저처럼 워홀막바지를 보내고 있을텐데,어떤 워홀을 보냈을까 궁금해지네요.
2.호주의 현충일 Anzac day 그리고 피크닉
제가 호주에 도착하고 1주일쯤 됐을 때,Anzac day를 맞아 집주인 로드니 부부와 함께 추모행사 같은걸 갔었습니다.
일단 Anzac day 에 대해 설명해드리자면 우리나라의 현충일 처럼 세계대전에 참가해 싸웠던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날입니다.
이 날 행사는 한국처럼 간단히 연설 후에 묵념 이렇게 끝이었고,묵념이 끝난후 집주인 아저씨가 혹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분이 있냐고 물어봤었는데 그 자리엔 없었습니다.
비록 국적은 달랐지만 자기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셧던 분들에게 존경심이 들었고,아이러니하게도 이 날의 행사때문에 한국의 참전용사분들에 대해 다시한번 더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가끔 저를데리고 피크닉을 가기도 했었는데,한국의 바쁘고 자극적인 생활에 익숙해져있던 저에게는 그냥 밖으로 나가 앉아서 시간을 보내며 음식만 먹고오는 것이 처음엔 지루하게 느껴졌지만,시간이 지날 수록 차츰 익숙해지며 이런게 여유를 즐기게 됩니다.
여유(?)를 즐기는중
그리고 음식은 호주에는 공원이나 해변에 바베큐시설이 있는곳이 많아 주로 거기서 뭘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거나 직접만든 쿠키를 먹었는데,가끔씩은 김밥과 한국의 배달음식을 그리워 하던게 생각나네요.
이런것도 좋지만 저는 김밥이 더....
3.호주에서의 첫번째 클럽???
평소처럼 일을 끝내고 와서 쉬고있던 어느날 집주인 아저씨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가 온다며 클럽을 같이 가자고 했었습니다.클럽이라면 한국의 클럽에대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던 저라 어리둥절 했으나 일단 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라면서 노래도 알려주고 유투브로 검색해서 트니까 회춘한듯 춤을 추시던 아저씨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어쨋든 클럽을 가게 됐는데 펍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대신 규모가 좀 있긴했는데,아마 그래서 클럽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싶네요.
그렇게 맥주도 마시면서 밴드노래도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밴드의 공연시간이 끝나고 그냥 음악을 틀어줬는데,갑자기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었습니다.
그 노래는 바로 '강남스타일'이었는데요 그냥 아시아인이 와서 틀어준거 인지는 모르겠으나 거기있던 많은 사람들이 춤을 따라 추는걸 보고 말로만듣고 글로만 읽었던 싸이의 인기를 실감 할 수 있었습니다.
4.top picker
4월중순 딸기가 주력작물인 카불쳐에서 아직 딸기가 나오기전이라 대부분이 돈을 못 벌고 있었으나. 그 와중에도 하루에 1~200불씩 벌어가던 친구들은있었습니다.
제가 일했던 농장에서는 다른곳과 달리 일본인이제일 빨랐습니다.(한국인이 탑픽커인 곳이 많습니다).
하루는 플랜팅이라고 묘종을 땅에 심는 일을 했었는데 6시간 가까이 일하고 제가 겨우70불을 벌었는데,그 날 그친구는 거의200불을 벌어가는걸 보고, 저정도 되야 농장에서 돈벌어가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친구 일하는걸 간단하게 하면 진짜 전투적으로 일합니다 조금쉬어도 아무도 뭐라안하는데,허리한번 안펴고 진짜 계속 일만 했습니다.솔직히 돈을 많이 버는건 부러웠으나 일하는 모습을 보면 납득이 갈 수 밖에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반년 뒤 다시 세컨비자조건을 만족시키려 농장에 다시 가게 되는데,그 때 느꼈습니다 '아!그냥 딸기농장이 힘든거였구나..'
5.Why not?
앞에서 말했듯이 집주인아저씨랑 산책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했는데,어쩌다보니 자동차에대한 얘기가 나왔고,아저씨는 미래에는 태양발전같은걸로 연료나 충전이 필요없는 차가 나올 거라고 했고,저는 제가아는 과학적 상식을 바탕으로 문제점이 너무많고 불안정해서 자동차같이 큰것을 움직이기는 힘들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 제 생각을 바뀌게 했습니다.
'나는 이때까지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장면을 인생에서 수도없이 목격했고,앞으로도 그럴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말입니다.저 만해도 15년전에 스마트폰이란게 상용화 될 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더군다나 아저씨의 인생동안에 인류는 달에 갔다왔으며 마리아나 해구를 탐험했고 우주의 신비를 밝혀왔습니다.
저는 이말을 듣고 오히려 젊은제가 이렇게 비관인시점을 가지고 있다는게 부끄러워졌습니다.물론 제가 맞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중요한건 맞고틀리는게 아니라 생각의 차이였습니다.
이 짧은 대화가 툭하면 '왜? 안될거같은데? 그걸 굳이 할이유가 있나?'를 외치던 저를 'why not?'이라고 말할 수 있게 바꿨습니다.그리고 이 말이 제 워홀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을만큼 중요한 역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무슨일을 하기가 망설여지면 스스로에게 why not 이라고 말을 걸며 설득을 합니다.
진짜 고작20분도 안되는 짧은 대화였지만 생각을 바꾸는데 시간이 중요한게 아니란걸 깨닫게 해줬던 아주 고마운 순간이었습니다.
6.이제 시드니로
카불쳐에서 2주정도 시간을 보냈을 때쯤,진짜로 여기를 떠야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돈은 벌기는 커녕 가져왔던것마저 떨어지고 있었고 시즌이라도 와야 돈이 벌릴텐데 저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그래서 한달뒤 올 친구와 함께 의논해서 시드니로 가기로 결정합니다.이유는 딱히 없었습니다 그냥 제일 큰 도시니까 뭐라도 할 게 많겠지 이 생각이었습니다.
결정을 하고난뒤에 바로 비행기를 예약하고 떠날 준비를 합니다.어짜피 오래있었던 것도 아니라 딱히 챙길것도 없고 만날 사람도 딱히 없었습니다.
그렇게 짧았던3주간의 카불쳐 생활을 마무리하고 5월13일 호주최대의 도시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게 됩니다.
출국을 얼마 안남은 시점에 칠칠치 못하게 여권을 잃어버려서 정신이 없어서 몇일 글을 못썻네요.
사실 저는 지금 여권을 만들러 시드니 대사관으로 가는 기차안인데요.
이렇게 된거 여행이라도 하자 라는생각으로 3-4일정도 머무를 생각입니다.
22:10~07:38.. 저때는 그나마 생기가 있어보이네요
조만간 생생한 시드니 여행후기로 찾아오겠습니
다.그리고 워홀일기는 별개로 계속 쓸 생각입니다.
오늘도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Ourselves 캠페인]
셀프보팅을 하지 않고 글을 올리시고
ourselves 태그를 달아 주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긴 젓가락으로 서로 먹여주는 천국이 이뤄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