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약속을 잡고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갔다. 엄마와 9살 정도 되는 딸아이가 보인다. 두분다 도톰하게 차려입고 있다. 엄마는 캐논 DSLR 을 가지고 있고 아이는 캐논 하이브리드 카메라 카메라를 걸고 있었다. 둘다 조그마하케 조그마하게 휴대하기 좋은 정도의 크기였다 엇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어 좋아 보인다. 웬지 왠지 여의도공원을 갈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딱 거기 쯤에서 내리신다. 같은 취미를 가진 엄마와 딸이라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계속 눈길이 가길레 가길래 무엇이 저리 눈길을 가게 했을까 내 안을 들여다 봐본다. 부모님에 대한 것들이 떠오른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신다. 딱히 취미랄께 없으니다. 없으시다. 아버지는 농사일 하시면서 이런 저런 도구를 직접 만드시는걸 취미 비슷하게 하시는 듯하다. 그나마도 무엇이 있을까 열심히 들여다 보아 나에게 보여지는 취미.. 어머니의 취미는 모르겠다. 늘 일하시느라 바쁘실 뿐 무언갈에서 무언가에서 재미를 느끼시는지 모르겠다. 소소하게는 내가 어머니가 좋아하는 통닭을 사갈 때, 가족끼리 수다를 떨 때, 내가 대학을 들어간다던지 즐거울 때 정도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자신이 즐거워 하는 것을 약간은 챙기시는 편이지만, 어머니는 그닥 챙기는 편이 아니신 것 같다. 늘 가족을 위해서 본인에 대한 것은 한발 자국 빼고 계신다.
함께 놀러갈 때도 어머니는 조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시는 느낌이다. 자신이 이렇게 쉬어도 되는지 그다지 허용하시지 못하는 것 같다. 나에게 쓰는 돈은 안 아까워하시면서도 본인을 위해 쓰는 돈은 아까워 하신다.
늘 나에게 이것저것 챙겨주시지만 그보다 먼저 스스로의 행복을 챙기기시기를 바래 본다. 동생이나 나나 부모님이 스스로를 위해 돈을 쓰시기를 바란다고 종종 말씀드린다. 하지만 돈도 써본 사람이 안다고 스스로에게 그런 것을 그다지 허용하시지 않는다.
어머니의 그런 패턴을 보면 할머니로 부터 내려왔음이 보여진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를 어머니가 9살 정도에 하늘로 보내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홀로 5명의 딸과 1명의 아들을 기르셨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한편으로는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의 삶을 얼마나 포기하셨을까 떠올려 보기도 한다. 명절 때 이모부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외할머니가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일하러 나가셨기에 일찍 학업을 포기하고는 동생들을 위해 집안일을 돌보고 조금 커서는 공장을 다니면서 집안에 금전을 보태었다. 그리고 결혼해서도 넉넉한 집안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학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힘든 일을 계속 하셨다. 나를 임신해서도 청소하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요즘 세션을 하면 태아의 기억쪽으로 많이 들어간다. 힘든일을 하면서 임신을 하셨으니 뱃속의 내가 사랑스러우시기도 하셨겠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함에 짜증도 많이 내셨을 것이다. "아직 때가 아니야"라는 것이 만트라처럼 나를 따라 다니는 것을 종종 경험하는데 그것이 거기로 부터 왔다는 것이 조금씩 명확하게 느껴지고 있다. 그 상황에서 힘겨웠던 어머니의 상황을 알기에 들여다 보면서 원망이 아닌 좀더 사랑으로서 다가서게 된다. 그리고 방금 말한 만트라에 대해서도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위해 시간과 금전이 있어도 허용하지 않는 어머니가 이해가 안되고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지금은 그렇게 오랬돈안 오랫동안 살아온 패턴을 알기에 좀 더 이해로 다가간다. 이 글을 쓰면서 좀 더 어머니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저리 함께 취미를 즐기는 모녀가 유난이 유난히 눈에 들었던건 이런 내면을 톡 건드려 주어서라 알아차려 진다. 무언가 눈길이 좀 더 가는데에는 내면에 그 이유가 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꺼내어서 들여다 볼 때 관련된 기억과 접촉하게 되고 놓아버리게 된다. 그것이 영감에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을 자연스레 따르게 될 것이다.
최근의 세션에서 계속 어머니과 관련된 것들을 다루었었다. 어머니와 별다른 이슈가 없고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들여다 볼수록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투명해서 보이지 않지만 두터운 벽 같은게... 그 이슈를 해소해 나가면서 어머니의 삶에 대해 좀 더 관심이 생기게 되고 연결성이 회복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처음 접하는 것은 부모고 부모와의 관계성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대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몇년 정도 명상과 관련된 곳에서 행정일과 세션에 보조 역할을 하기도 하고.. 다른프로그램에서 어시스트로로 어시스트로 활동하기도 하며 보았던 그리고 지금 속해 있는 곳에서 역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변하는 부분은 부모와의 관계였던것 같다. 삶이 막히고 안풀리는데 부모와의 관계를 들여다 보고 온전히 끌어 안고 풀어내기 시작할때 삶에 가장 큰 변화가 오는 것들을 많이 목격했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태아 때의 기억과 관련된 것도 많았다. )
처음 이런 맥락을 접하고는 나의 이런 저런 성향을 보며 부모님을 많이 원망하기도 했다. 사실 부모님은 삶에서 늘 최선을 다했고 그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로서 온전히 끌어안고 경험해낼 때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누군가 변화하기를 바라기 보다 내가 변화할 때 자연스레 주변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본디는 부모와 같은 취미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 쓰려 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다른 방향성으로 이어졌지만 이편이 훨씬 좋았던것 같다.
사랑의 상처는 대를 이어 전달된다
사랑의 상처는 고통스럽다.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가 맨 처음 보이는 반응은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가족 시스템은 언뜻 생각할 때 상처를 막고 보호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족 구성원들의 무의식 속에 상처를 계속 전달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상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면서 고통을 양산하고, 가정 안의 사랑을 조건 짓는다.
가정 내의 무의식은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로부터 전해 받은 사랑의 상처를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 우리는 그 전달의 고리 속에 존재한다. 우리의 자녀들도 그 고리의 일부를 이룬다. 그들도 나중에 성인이 되면 자기의 자녀들에게 똑같은 상처를 전달할 것이다. 다시 말해 가정은 똑같은 행동, 태도, 사고방식을 되풀이한다. 상처를 견디면서 상처를 전달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
/사랑충동 중 /
임상적으로, 모든 치유하는 성직자, 신앙의 체계, 회복 양식들은, 부정적 신념체계와 감정을 놓거나 내맡기고 자신과 타인을 향해 보다 자비롭고 용서하는 태도를 채택하는 일의 중요성을 믿는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사람이 위기 감정 분개, 시비 분별을 포기할 때, 전에는 타인에게 투사되었던 죄책감과 자기 혐오가 줄어든다. 대신 긍정적인(무탈한) 건강한 감정이 부정적 감정을 대치하며, 그 결과 뇌 자체의 우세한 생리적 경로에 변화가 일어난다. 영적 지향이 있는 이는 뇌에서 정보를 사실상 다르게 처리하는데, 그것은 긍정적인 심리적 생리적 이로움을 낳는다.
역설적인 것은, 이익은 에고가 이타심이 대단히 이롭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에고의 사리 추구에 의해 파생된다는 것이다. 에고가 자기 중심적 목표를 놓는 것이 이롭다는 걸 배울 때, 겸손함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고 무지가 아닌 지혜라는 점을 각성하면서, 에고 자체는 그 다음에 영적 탐구를 위한 도약대이자 그 자신을 초월하는 수단이 된다.
/진실 대 거짓 중 /
어머니의 인격 안에 깃들어 있는 여성은 우리가 최초로 접촉하는 존재이다. 모든 것은 존재의 진정한 융합과 함께 시작된다. 아이는 어머니의 연장이며, 그 둘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거기에는 신비스러운 공유가 존재하며, 어머니로부터 아이에게 그리고 아이로부터 어머니에게로 심리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다. [칼 스턴]
좋은돌봄
어머니가 자신의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는 , '나됨' 이라는 인식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어머니 자신을 잘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모든 부분을 괜찮게/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 걸 의미한다. 특별히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편안해 할 필요가 있다. 만일 어머니가 자기 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없다면, 아이에게 신체적인 평안함을 줄 수 없다. 어머니가 스스로에게 편안하지 않다면, 아이에게도 타고난 자신감을 줄 수가 없다. 에릭 프롬은 어떻게 어머니가 지닌 내면의 적대적인 삶의 태도가 자녀로 하여금 삶의 태도에 있어서, 특별히 몸이 가진 본능적인 정열에 대하여 스스로 두려워하게끔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해 서술했다.
반영
본능적인 삶은 뇌의 가장 원시적인 부분에 의해 통제를받은다.받는다. 이것은 먹고, 자고, 접촉하고/만지고, 배출하는 것과 육욕성, 신체적인 즐거움이나 고통 등과 관련이 있다. 인생의 시작단계에서는, '나는 너', 혹은 '나는 다른 사람'인 셈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어머니라는 존재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나는 어머니가 느끼는 대로 느낀다. 어머니가 싫어하는 것도 나는 싫어하게 된다. 결국 어머니가 나에 대해 느끼는 대로 나는 자신에 대해 느끼게 된다. 신생아 때는 감정이 먼저이다. 어머니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잘 했는지는 문제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엄마가 아이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이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의 어머니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해야 했었고 그로 인해 분노하고 있다면, 당신은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것을 알고 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신생아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