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연극 [어게인]을 보았습니다.
요즘 현대 젊은이들을 대변한다고 보여지는 주인공 철수가 있습니다. 어려운 취업 질문에도 막힘없이 잘 대처하면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만,
학벌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떨어지고 맙니다. 친구와 가족에게 도움은 커녕 오히려 더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 때 천사가 나타나서 인생에서 돌아가고 싶은 지점을 얘기하면 그 때로 시간을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음악에서 1분 미리 듣기가 있는것처럼 10분 미리 살기로 체험해볼수 있다고 하면서요.
단, 10분 미리살기는 3번만 가능하고 이후에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철수는 군대시절로 돌아가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로 했으나, 말도 안되는 군시절로 돌아가서 계급에 따른 차별을 받습니다.
차라리 대학시절로 돌아가서 스펙이라도 팍팍 쌓겠다고 했으나, 입학하면서부터 순위가 정해지는 대학시스템에 불이익을 받습니다.
아무걱정없는 유치원시절로 돌아갔으나 이역시도 금수저 친구에게 상대적으로 박탈을 당하면서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낍니다.
결국 이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곳으로 보내달라고 절규하는 우리의 주인공 철수.
정자로 돌아갑니다. 그 곳에서 동료 정자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달리기 시작합니다.
동료 정자들을 어떻게든 추월해서 선두를 지키게 되는 철수 정자. 카트라이더 같은 요소를 넣어서 참신한 시각적인 효과를 연극에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드디어 철수 정자는 기다리던 난자를 만나게 되는데....
과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가장빠른 정자가 난자를 만나는 것일까요?
그렇게 우리는 태어날때 부터 무한 경쟁을 했던것이고, 그렇게 1등을 해서 살아남은 존재일까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의 경쟁은 어쩌면 생명체의 숙명같은 거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경쟁이 아니라 협업이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무정자증이나 불임에 대한 부분이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1마리의 정자만 있으면 모든 부부들은 애기를 가질 수 있을텐데
왜 그렇게 많은 정자를 가진 아빠들이 아기를 낳지 못하는지 말입니다. 그건 수많은 정자들의 도움으로 겨우 마지막 한마리의 정자가 살아남는 다는 것입니다. 앞서나간 정자는 처음에 길을 내는 선구자의 역할을 다하고 생명을 마칩니다. 뒤이어 그 선구자를 따라서 운좋게 난자의 벽을 쉽게 통과한 정자가 마지막 수정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동아사이언스 아래 기사 참조
[카드뉴스] 2등 정자가 임신한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1628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계속 경쟁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발전해왔습니다.
그래서, 전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헬조선으로 일컬어지는 다양한 상대적 빈곤감은 사회전체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고령화와 함께 낮은 출산율, 그리고 높은 자살율등을 보더라도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물론 경쟁없이 모두가 손을 잡고 함께 결승선을 들어갈 순 없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회는 다양한 경기가 펼쳐지도록 그래서 각 분야에서 1등을 하면 모두가 똑같은 성취와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특정 분야의 종목에 너무 많은 스폿 라이트를 비추고 있는건 아닌가 뒤돌아 봐야 합니다.
공무원이 되는게 꿈인게 나쁜일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공무원을 꿈꾼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것이죠. 그만큼 사회가 불안하다는 반증아니겠습니까? 각자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서로 서로 도와주면 그게 곧 전체의 발전이 되는 사회.그렇게 다양한 꿈과 그 꿈의 실현을 통해 사회에서 제대로된 대접을 받고 기본적인 의식주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회. 아직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그리 멀지는 않았다고 여겨집니다.
연극 주인공 철수처럼 우리 대한민국도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게 해준다면 우리는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