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씬은 영화 <스물>의 초반부 장면이다. 세 명의 주인공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문을 나설 때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며 전개가 된다. 학교 문을 나서고 부터는 선택의 순간이 계속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들은 '현실'과 '이상'을 상징하는 양갈래길을 두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서로 이게 낫다, 저게 낫다 투닥거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던진다.
"그런데 이걸 지금 정해야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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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그렇게 오래 산 것 같지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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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딱 한 장면. 너무나도 공감되었고 2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씬이다.
스무살. 참 애매한 나이이다. 만으로는 19세. 법적으로 성년이 되는 시기임과 동시에 부모의 품을 떠나는 시기이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했는데 성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수능이라는 시험을 기점으로 그전까지 살아온 생활은 완전히 청산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도 참 애매하다. 당시 나는 갑자기 찾아온 여유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 전에는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매일같이 학교에서 살았고, 공부 말고 딱히 할 것도 없었던 시기였다. 그저 한 두 시간의 여유, 쉬는 시간만 있어도 행복하던 때에 물꼬가 터지듯 한가함이 몰려왔다. 제대로 놀아본 적도 없어서 그저 애매하게 놀고, 공부할 것도 없어서 애매하게 끄적댔고, 여행도 한 두번이면 충분히 피곤했다. 그저 하염없이 애매한 나날들이었다.
동시에 선택해야 하는 것들은 너무 많아졌다. 학창시절에는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담임선생님의 조언, 부모님의 말씀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이에 따라 생활하기만 하면 큰 문제 없이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때부터는 모든 걸 직접 해야만 했다. 둥지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날아가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더이상 둥지에 남아서도 안되고, 날개짓을 게을리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우리는 준비가 안되어 있다. 은행 계좌 여는 것 하나 버벅대는 내게 씌워진 굴레는 너무 많았던 것이다.
너무나도 가볍다. '좋을 때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뭐가 정말 좋은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따라주는 술맛은 그저 쓰기만 할 뿐이었고, 다 잘 되라며 하는 조언들은 버겁기만 했다. Please, let twenty be twenty. 스무살은 스무살이게 내버려두자. '하고 싶은 것을 찾아라'라는 말조차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나이이다. 현실과 이상이라는 양갈래길 앞에서 고민하는 스무살에게, 그리고 "그래서 이걸 지금 선택해야 하나"라는 물음에게도 그저 미소로 대답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