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mikyung님의 social-innovator] 캄보디아의 사회적 문제(Social Problem)의 시작, 역사를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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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에 가입한 국가는 193개국이라 합니다. 가장 마지막에 가입한 국가는 남수단입니다. 세상엔 수많은 국가들이 있고,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넉넉하게 잘사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50년전, 찢어지게 가난했던 국가가 지금은 이런 부국이 되었습니다. 자원도 없었습니다. 전쟁이후 번듯한 사회기반시설 하나 없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근현대사를 좋아합니다. 어떻게 대한민국이 21세기 이런 모습으로 변모했나. 정치,경제,사회,문회 등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지만, 이 모든 분야를 간파하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1공화국에서 5공화국, 문민정부, 그리고 현재까지, 수 많은 정치인, 기업, 시민단체, 민주화운동, 간첩사건, IMF (Asian Financial Crisis / Tomyangkung Crisis), 올림픽, 월드컵,,, 근 50년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에는 주역들이 있있었고, 싸움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한가지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들은, 어떠한 일도 혼자 스스로 작용해, 혼자 스스로 일어날 수 없다 입니다. 항상 어떠한 주체들이 상호관계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결과를 도출해 한가지 이벤트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단편적으로 IMF만 봐도, (아시아 금융위기를 다른 말로 똠양꿍 위기라고 부르기도합니다) 이것이 사실상 시작한 국가는 대한민국이 아닌 태국이란 나라입니다. 이렇게 국가들은 상호간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을 이루기도하고, 퇴보하기도 합니다.

국내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오늘은 제3세계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캄보디아, 미얀마 아마 분량이 많아지면 캄보디아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참 생소하지 않나요? 캄보디아, 미얀마 이들은 어떤 국가길래 현지 많은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있을까요?

캄보디아

캄보디아하면 떠오르는 것 앙코르와트입니다. 앙코르와트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정말 광범위한 곳이고, 크메르왕국의 찬란한 문명을 보여주는 곳이죠. 한때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그 왕국이 어떻게 몰락하고, 캄보디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가 되었을까요 ?

우선 국가 개황을 살펴보시죠

  • 독립은 1953년 프랑스로부터 했다고 합니다.
  • 현재 인구는 약 1500만명,
  • 국내 총 생산은 360억 달러로, 세계 101 위 이며,
  • 1인당 기준으로 보면 2,361달러로 세계 153위 입니다.
  • 공식적인 화폐가 있지만, 실제로 캄보디아는 미국달러를 사용합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 2017년 기준 노동자의 한달 월급이 170불 (약 18만원)이라고 합니다.

이런 국가들이 발전을 하려면 많은 FDI (Foreign Direct Investment)가 필요합니다. 베트남은 최근 많은 해외 투자유치를 하면서 급속도로 발전을 하고 있죠. 캄보디아 또한 FDI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SEZ(Special Economic Zone)이라는 경제특구를 만들어 해외 투자자들에게 공장부지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곳에서부터 사회적문제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숨기기 급급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파헤치는 것들은 NGO 들의 역할입니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란, 저임금, Labor Union 부재, 등등이 있는데, 조금씩 개선되곤 있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때 해외 투자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묵인하기 일쑤입니다.

SEZ (Special Economic Zone) 경제특구

경제특구란 한 국가의 영토 안에서 또는 영토 사이에 그 안에서 특별한 행정구역을 설정함으로써 그 지역을 관할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곳의 행정은 투자와 사업을 위해 계획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력을 약화시키고, 환경을 파괴시키기도하며, 투자자(자본가)들은 세금 감면의 혜택, 그리고 물건의 이동을 좀 더 자유롭게 합니다.

어떤 점들이 매력적인가? (국가입장)
경제특구의 목표는 바로 FDI를 유치시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 그리고 기존 산업분야를 더 다양화 시키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외국과 더 많은 교역이 가능하게 해주죠. 정부는 이러한 새로운 경제정책을 SEZ를 통해 실험할 수 있고, 가능성이 있으면 지속성을 늘릴 수 있습니다.

투자자(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으로 제품생산단가를 낮추고, 새로운 시장에 접근을 하길 원합니다. 예를들면, 미얀마는 완전이 폐쇄정책을 펼치며, 국가개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미얀마는 서서히 개방을 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투자자들은 이곳을 기회의 땅이라 봅니다.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터치당하지 않은 그곳, 그곳 시장에 접근을 하고, 그 시장을 장악하길 원하죠.

그렇다면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정부는 더 많은 비용, 인센티브, 그리고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지출을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의 사회복지공헌을 감소시키며, 낮은 계층(노동자)간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노동자들은 위험한 환경에서도 일을 해야하죠. 그리고 국가는 노동력에 의존을 합니다. 이게 무슨말이냐? 임금 인상을 못해줍니다. 임금인상을 해주면 투자 매력이 떨어지니까요. 결국, 돈은 기업들이 벌고, 국가와 노동자의 갈등은 심화됩니다.
-> Middle-Income Trap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가난이 지속됩니다

캄보디아 SEZ의 문제점

캄보디아의 훈센총리는 약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국가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즉, 나쁘게 말하면 독재를 하고 있고, 착하게 말하려해도 독재를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독재를 하면, 소소의 기득세력들이 국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 합니다. 물론 언론탄압이 일어나며, 보도되어야 할 것들이 보도되지 않습니다. 캄보디아의 SEZ는 일부 몇몇사람들에 의해 소유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제약되었고, 부정부패가 만연합니다. 임금인상과 인권관련된 데모가 있으면 관련자들이 실종되거나 총에맞는 사고도 발생을 합니다.강하게 캄보디아 정부가 입주기업들을 백업해줍니다. 경제특구로 진입문은 군대가 관리를 한다고 합니다. 2013년에 일어났던 임금인상 요구당시 입구에 컨테이너를 막아놓고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했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은 그들만이 알겠죠. 수 많은 탄압이 있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언론은 이러한 것들을 보도하지 않습니다.

SEZ에 대한 비판

SEZ는 일자리 창출에 탁월한 역할을 해냅니다. 개성공단도 하나의 SEZ로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이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은 어떤것 들이 있을까요?

  1. 정부(몇몇 기득권 세력)이 수익을 가로챔
  2. 인권, 노동법이 무시됨
  3. 기타 등등

또한, 결국 투자자들의 배를 불리는 구조입니다. 낮은 임금으로, 제품 생산단가를 낮추고, 시장 경쟁력을 높여줍니다. 노동자들은 그러한 물건들을 살 수 없습니다. 빈부격차를 더 크게 늘립니다.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는 아마 국가발전엔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들이 원하는 사회기반시설건설 등을 국가에게 요구하겠죠. 또한, 국가의 사회,환경보호를 저해시키며, 시민과 투자자들간의, 또는 국가와 시민과의 분쟁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노동조합이 제데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떠한 협상도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훈센은 얼마나 부자일까?

캄보디아의 부정부패 수치는 전세계의 탑급으로 속합니다. 훈센의 연봉은 13,800달러라고 합니다. 연봉이 약 1500만원이라는 건데, 훈센家가 소유한 총 부의 가치는 1 Billion 달러, 즉 10억달러 (1 조원)이 넘는다고 하니다.

캄보디아 노동자의 월급

한달의 월급을 170달러를 받는다고 합니다. 8시간기준 산정된 170달러이며,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더 많은 금액은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170달러 기준, 주 5일 8시간을 일한다고 가정을 하면 하루 일급 6.8 달러, 하지만 이것또한 과장된 것이라 봅니다. 임금협상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부는 마지못해 인상을 해주지만, 인상을 하기까진 수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강요됩니다. 임금인상 요구를 하면, 일자리를 잃는 것이 십시일반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회구조가 문제이겠지요, 캄보디아의 물가 관광지 기준으로 보면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관광업종사자들은 아마 중산층에 속하겠지요, 하지만 소외된 계층들은 어떻할까요? 제대로된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언론의 기능?

언론이 제기능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 대해 알고 있겠지요. 대한민국도 근대화를 이루면서 많은 언론탄압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조,중,동의 신문사는 재벌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재벌들은 정치인들, 군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죠. 캄보디아의 언론은 훈센家가 소유하거나, 그와 밀접한 친분이 있는 여당에서 관리를 하거나,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는데, 외국인 조차 여당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상, 보도되어야 할 것들이 보도되지 못하고, 국민들은 속고있겠지요. 알면서도 속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일 수도 있구요.

다시 캄보디아로!

캄보디아는 195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했습니다. 노로돔 시하누크왕은 당시 국왕이었는데,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사회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 암시장, 경제문제, 부정부패, 마이너스 성장률 등등
시하누크왕이 쫓겨나다

1967년 내전이 일어났습니다.국내 정치에서 Power Struggle이 일어났습니다. 론 놀 (Ron Nol)장군은 시하누크왕을 1970년에 쫓아냈습니다. 이때 시하누크왕은 김일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도 하죠. 이 왕은 중국으로 도망쳤고, 크메르 루즈와 힘을 합칩니다. 당시 론놀 장군은 캄보디아의 국명을 크메르 공화국으로 바꾸고 이는 1970년~1975년까지 지속됬습니다. 당시, 론놀 장군은 친美 파였기에, 미국과 친한관계를 형성하고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론놀은 베트남사람들을 학살하고, 이에 30만명의 베트남사람은 국격을 넘어 도피하기 시작합니다. 베트남 전쟁이 캄보디아까지 뻣칩니다. 미군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폭탄을 투여합니다 (1969년~1973년), 그리고 1975년 크메르 루즈가 수도인 프놈펜에 입성을 하고, 민주 캄푸치아국을 만듭니다.

민주 캄푸치아

이들은 새로운 국민 (도시거주자)와 기초 국민(지방거주자)으로 국민을 둘로 나눕니다. 95~97%의 국민이 협동농장에서 일을 하게 강요받기 시작합니다. 균등한 사회라는 이름 아래 모든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곳에서 일을하며, 여자와 남자는 분리되었습니다. 물론, 외국과 모든 무역을 금지했고, 내수로 모든것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사회소수자들과 종교인들은 모두 처형당했습니다. 균등성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지식인, 대학생, 교수, 변호사, 법관, 심지어 안경쓴사람, 옷을 잘입는사람등을 모두 처단해버렸습니다. 미친놈들이죠

당시 사망자 수

당시 사망자수는 약 75만명~3백만명에 다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수치는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비공식적으로 처형당했겠죠. 당시 도시거주자 (새로운 국민) 중 29%는 피해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지방거주자 (기초 국민)중 16%가 피해를 당했고, 모든 베트남 사람들은 처형당했습니다. 50%의 중국인들 ,40%의 라오스, 태국인들 36%의 챰크메르족, 사회소수자들이 모두 처형당해 당시 인구중 15%가 처형당했습니다. 미친놈들이죠

크메르 루즈의 몰락

1978년 5월, 헹 삼린 (Heng Samrin)과 치 심 (Chea Sim), 훈 센(Hun Sen)들이 반란을 일으켜 성공합니다. 하지만, 인구의 대다수가 협동농장에서 일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도시들은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합니다.

왜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침공했나?
  1. 베트남은 당시 쌀 부족으로 인해 고충을 겪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인구 대부분이 협동농장에 들어가면서 농작물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2. 프랑스 식민지 시대 당시 캄보디아-베트남 사람들의 관계가 앙숙이 되어버립니다. 고로, 많은 베트남사람들이 캄보디아에서 희생당하기도 했죠.
  3. 국경분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냉전시대에 이상한 양상이 발견됩니다
러시아(소련)은 베트남과 라오스를 지지하고,
중국은 캄보디아를 지지했습니다.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크메르 루즈는 서쪽으로 도망갔습니다. 당시 크메르 루즈는 서쪽에서 큰 활약을 해왔고, 서쪽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실질적으로 1979년 4월에 자유를 이뤘습니다. 캄보디아는 베트남의 침공을 환영했습니다. 적어도, 당시는 그랬다고 합니다. 이게 웃긴게, 이 침공을 양 국가가 다르게 해석을 합니다

베트남은 침공이 옳은 일이라고 말을하고, 캄보디아는 현재 그것은 올지 못했다고 논쟁을 합니다. 이 의견은 국가간의 분쟁이며, 누구도 타협하고 싶어하지 않는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과

당시, 프놈펜 (수도)는 죽어버렸습니다. 화폐도 없었고, 예산도 없었고, 물공급도 원활하지 않았으며, 시장이 없었고, 전력이 없었고, 마실물이 없었습니다. 모든것이 안정세에 돌아서자, 협동농장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 바빠졌습니다. 생이별한 가족과 친척들을 찾아야만 했고, 정신적 충격인지 지속적으로 쌀 생산에 매진하기도 했습니다.

교육받지 못한 인구들

1983년 한 자료를 따르면 당시 상황속에서 희생된 지식인들의 수는 아래와 같다고 합니다

  • 594명의 의사, 치과의사, 약사
  • 675명의 변호사와 교수
  • 18,000명의 선생님
  • 10,550명의 학생
  • 191명의 기자
  • 1,120명의 예술가
  • 25,168명의 스님

국가엔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해졌습니다. 교육이 후퇴한 상황입니다.
교육이 후퇴하면 국가기반이 무너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다못해 영어라도 할 줄 알면, 좋을 텐데요,
많은 필리핀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간호사등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금액을 필리핀으로 송금한다고 합니다. 가족들을 위해서요
심지어 이곳 크루즈에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승무원이 많습니다
능숙한 영어는 아니지만, 족므이라도 한다면, 더 나은 곳에서 일을 할 수 있겠죠,
그렇기에, 전 적어도 영어는 또는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프놈펜의 재건설을 위하여

1979년 당시 쿠바, 베트남, 소련, 동유럽이 지원을 해지구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초로 세워진 부서(Ministry)는 정보부인데, 총 3명으로 이루어진 정부기관이었고, 한명의 변호사, 한명의 의사, 그리고 캄보디아 정부 비서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있던 와중에 아세안, 중국, 서방국은 지속적으로 조건없는 베트남군의 철수를 요구하였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심지어 NGO의 지원까지 멈추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베트남과 캄푸치아인민공화국은 크메르 루지와 관련된 인도주의적 지원을 차단하였습니다. 서로 인도적인 지원을 멈추고 싸웠습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여기서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후 일련의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고, 베트남군은 소련의 붕괴와 근접한 1989년에 철수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 국가 수반이 훈센이 되었고, 독재가 지속되었다는 것이지요.

사실상, 캄보디아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플러스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건비도 오르고 있구요. 하지만,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면서 어떤생각을 하시나요?

왜 캄보디아가 가난해 졌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아시나요?

모든 국가는 그들만의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역사가 있고, 정치가 있고, 문화가 있습니다. 그것을 토대로 미래가 그려지고, 오늘날의 국가가 존재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매 순간 어려운 기로에 놓여있었습니다. 팩트는, 우리는 그들보다 더욱 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직후엔 캄보디아보다 더 가난햇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결론

글쎄요, 더 나아졌을까요? 똥을 싼것을 치운 것 처럼 보이지만, 치운것이 맞을까요? (이런표현 죄송합니다), 아직도 캄보디아는 싸우고 있습니다. 아니, 그 노동자들, 국민들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씨엠립을 간적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 마사지를 해주고 있습니다. 죄다, 20살이 넘었다고 하지만, 누가봐도 청소년들입니다. 학교를 가야 할 나이에 그들은 돈을 법니다.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야 하니다. 정규교육을 받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잠시동안의 수입이 일평생의 재산이 될 순 없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이 결국은 평생의 재산이 되겠지요.

leemikyung@leemikyung님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먼 미래의 기회를 주고 싶은데, 그 중 하나는 스팀잇과 같은 플랫폼에 대한 인식과, 영어교육 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오늘날의 1달러, 팁은 큰 의미가 없어보입니다. 그들의 삶은바뀌지 않습니다.

변화란 내일 당장 찾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수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구조가바뀌고, 정치가 바뀌고, 그들의 삶이 바뀌려면, 지속성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leemikhyung@leemikhyung님은 뛰어다닌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캄보디아에 대해 적어봤는데요, 많은분들이 출처가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일전에 동남아시아의 대외정책이란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각 국에 대한 근현대사 정치사를 배웠고, 사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캄보디아의 SEZ, 아체의 분리독립, 태국의 근현대사 정치사입니다. 그때 배운 노트를 활용했습니다 :)

이 이야기를 이곳에서 할 줄은 몰랐지만, 사회적 문제에 초점을 두고 역사를 읽으니, 어디서 이 사회적 문제가 시작 되었는지 볼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려했지만, 이것 말도 더 많은 정답이 있겠죠, 부분적이지만, 저 또한 글을 두시간동안 정리를 하면서 재밌었고,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좀 더 탐구해보려 합니다.
이곳에서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시간이 참 재미있네요! 다시 뮌헨으로 돌아가면 어찌될지 모르지만, leemikyung@leemikyung님의 'social-innovator'은 지속적으로 탐구하고,공부해보려 합니다.
사실 계속 석사를 없지않아 고민하고 있는데, 만약 한다면 정치경제학이나, 동남아학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기에, 오늘도 기쁘게 길을 적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미얀마 이야기는 다음에 적어보겠습니다! (사실 정보가 많이 없지만,,, 아니면 아체와 오키나와에 대해서도 적어보고 싶네요!)

토론은 언제나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