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기로 생각했던 것은 색감이 너무 예뻐서였다. 사진이나 예고편들로 봤을 때 보이는 화면과 풍경과 색감이 너무 예뻤다. 특히 보라색으로 된, 주인공이 살고 있는 호텔이 너무 예뻤다. 약간 부다페스트호텔처럼, 그렇게 색감이 예쁜 그런 영화였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그게 아니었다. 너무 예쁜데, 화면은 너무 예쁜데 거기서 살고 있는 아이도 너무 예쁜데 거기거 전혀 예쁘지 않은, 너무 슬픈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런데 화면은 너무 예쁘고 아이도 슬퍼하지 않고 엄마도 슬퍼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예쁜 장면들과 예쁠 수 없는 이야기들에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 예쁜 장면들로 인해서 더 슬퍼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영화이기 때문에 그나마 이렇게 예쁠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도 아이도 사실 속은 곪아있겠지만 서로 즐거워하는 장면도 영화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상황들은 어딘가에는 일어나고 있다. 반드시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현실이 예쁘지는 않을 것이다. 겉으로라도 예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되면 좋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해결되어야 할 일이라는 것은 안다. 이렇게 예뻐보이는 곳에서 예쁜 아이들이 예쁠 수 없게 살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슬픈 장면은 별로 나오지 않지만 슬픈영화였다. 색감과 예쁜 아이에 웃다가도 슬픈영화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가 다른 위탁가정으로 보내지려 할 때, 영화 내내, 이런 안좋은 상황속에서도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아이가, 그래서 정말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었던 아이가 펑펑 울면서 다신 못볼지도 모른다고 잘 있으라고 말을 할 때, 울음을 터트리느라 말을 못하겠다고 할 때, 그제서야 그 예쁜 곳에서 늘 장난치고 뛰어다니고 활기차던 그 모든 것이 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엄마는 어떻게든 먹고 살기위해 성매매를 했고 그런 환경에서 아이가 키워져서는 안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상으로 볼 때는 연민이 들 수 밖에 없다. 저 가족이 저렇게 될 때까지는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 그리고 그 일들을 하나도 모르면서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과연 저 모녀가 저렇게 될 때까지 다른 이들은 무엇을 했겠는가. 사회는. 국가는. 저게 현실이었다. 마지막에 아이는 친구의 손을 잡고 환상적인 세계 , 디즈니랜드로 도망가지만, 그것이 영화의 끝이었지만, 어찌됬든 아이는 거기서 잡힐 것이다. 벗어나질 것이다. 예쁜 풍경들은 그저 환상이니까. 씁쓸했다. 그래도 아이가 그곳에서 엄마와 함께 지냈던 시간들을 모두 불쌍하고 안됐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는 거기서 예쁘게 행복했을 때도 많았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더 아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