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의 아침. 지금은 옛날처럼 다 챙기지도 않고, 공휴일도 아닌지라..
기억하는 사람만 기억하는 그런 보통의 날이지만.
만일 조선시대였다면 아침부터 굉장히 부산한 날이었을 것 같다.
(사실 이건 내가 단오즈음이 되면 늘 해보는 상상이기도 하다.)
창포물도 만들고, 마을 커다란 나무에 그네도 매고.
아마도 난 전날밤부터 부채에 적을 멋들어진 시를 짓거나 찾느라 바빴을테고.
그런다음 그 부채를 들고, 친구들과 마을 어귀로 그네타는 처자들 구경을 가지 않았을까?
씨름구경도 갔겠지만, 아마 구경만 했을 것 같다.
워낙 책상물림이라.. 솔직히 씨름은 자신이 없다.
▶ (신윤복-단오풍정)
어쩌면 머리를 감는 처자들을 훔쳐보려고
몰래몰래~ 개울가를 숨어들었을지도?^^;
(잡았다~! 요놈! 철컹철컹~!)
아, 그럴 나이는 이미 지났겠구나.
정말 고려시대, 조선시대였으면..
지금 즈음은 한 집의 가장이 되어있겠다싶다.
아내도 있고, 아이도 두어넛은 있을테고.
글월만 읊어대는 선비였으려나?
지금으로 빗대어 보면 진사나 생원은 되었을 것 같긴한데.
뭐, 여튼.. 성격상 남녀크게 가리지 않으니 집안일도 많이 도와줬을테고.
(물론 도와준다고 쓰고 참견한다고 읽는다. --;)
수리떡, 제호탕을 만들어서 나들이를 갔을 것 같기도 하다.
아이 목마태워서 씨름구경, 활쏘기 구경 다니지 않았을까?
요즘 단오에 한복입고 나들이 하는 어린 친구들이 많던데.
나도 한번 그래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사무실~^^;;
올해도 단오부채는 못만들었고, 사무실에서 몰래몰래 이 포스팅을 적고 있다는거~ ^^;
작년에도 단오부채는 못만든 것 같은데.. ㅜㅠ
흔히 조선시대하면 남자들이 '공자왈~' '맹자왈~' 이러고 있을 것 같지만..
역사를 보면 그 정도로 꽉막힌 사회는 아니었다고 한다.
영정조이후 조선 후기로 오면서 그렇게 되긴 했지만.
할아버지가 육아일기를 쓰고, 손주 목마도 태워주고,
연암처럼 스스로 고추장을 담그기도 하고, 여러가지 요리를 하기도 했다.
내가 만들어서 보낸 요리가 맛있었냐고 아이들에게 리플(?)을 요청(&닥달)하기도 하고.
다산처럼 아내사랑이 지극해서 결혼하고서도 매번 연애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축첩이 가능했지만, 평생 서로만 보며 지낸 부부도 많았고.
이는 비단 임금라고 다르지 않았다.
상선 눈을 피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귤을 품 속에 소중히 가져가고,
내 아이가 보고싶어, 경연이 끝나자마자 버선발로 달려나가고..^^
그때도 지금도, 다 사람사는 세상이었으니까.
#.PS
주말에 갑자기 단오이야기로 컷만화꺼리가 생각이 났다.
뭔가 재미있어질 것 같아서 콘티를 끄적이다..
근성이 바닥나버렸다는건.. 우리들만의 비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