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23 (주일)
■ 민수기 19:1-10
[ 부정한 자에서 정결한 자로 ]
거룩하고 성결해야 하는 것은 레위인이나 제사장의 의무만이 아닙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따라야 할 법의 율례이며 마땅히 지켜야할 책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정결을 위해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제사장에게로 끌어오게 하여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게 하여 부정함을 씻도록 하십니다(1-2). 흠이 없다는 것은 몸에 질병이 있거나 상처가 있는 것을 드리지 말도록 한 것이며, 멍에를 멘 적이 없는 암송아지를 드리도록 한 것은 사사로운 수익을 위해 쓰였던 것을 드리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처럼 일터에서 부린 적이 없고 흠이 없어 나무랄데 없는 붉은 암송아지를 제사장 엘르아살에게로 끌고가 제사장의 목전에서 진영 밖에서 잡도록 하셨습니다(3). 특별히 백성들의 정결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 그리고 그것이 레위기 12-15장에서 기록한 것처럼 주검에 의해 부정해진 자가 치뤄야할 정결예식과 같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탐 후에 "차리 애굽에서 죽었으면 좋았으리라"고 하며 하나님의 종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인해 여호수아와 갑렙 외에 정탐꾼들과 많은 백성들이 재앙으로 죽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14:1-38). 그들은 이처럼 가데스 바네아의 반역 사건이후에 이스라엘 진영 내에서 수 많은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또한, 모세와 아론에게 반역했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그들과 함께 동조했던 이백오십 명의 지휘관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죽은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16:31-35). 이처럼 백성들에게 부정을 씻어내고 정결예식을 행하도록 하신 것은 불가피하게 주검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암송아지를 제물로 드리도록 한 것은 속죄제가 아니라 부정함을 씻기 위한 정결예식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아론을 위해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16:1). 즉, 속죄제물로는 암송아지가 아닌 수송아지를 드리도록 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죄와 부정을 깨끗하게 한 것은 희생제물의 피로서만 가능했습니다. 구약에서 희생제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멍에를 멘 적이 없으신, 이 땅 위에서 사사로이 부와 권세를 추구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순종하셨던 예수님의 대속의 피로 인해 우리는 법적으로 정결한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으로서 성결하게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이러한 희생제물을 통한 구약의 속죄제나 정결예식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백성들에게 그 해결책을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뿐만 아니라 부정함에 대해서도 희생제물을 드리도록 한 하나님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는 곧 죄와 부정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부정함에 대하여 불법과 우상과 어둠과 관련된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고후6:14-18). 사도 요한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어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일1:6). 우리는 죄를 단순히 도덕적인 기준으로만 생각하여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죄는 곧 부정함이며 부정함은 곧 죄가 되는 것으로, 그 부정함은 도덕적인 기준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희생제물을 드린다는 것을 단순히 종교적인 제사의 형태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죄와 부정함에 대하여 대속할 수 있는 제물만 드리면 된다라는 것은 오히려 백성들에게 죄에 대한 경각심을 떨어뜨리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회막 앞에 제사장이 피를 찍어 뿌리게 함으로 정결하게 하였고, 제사장뿐만 아니라 제물을 드린 자의 옷을 빨고 몸을 씻도록 했으며 정결해지기까지의 일정한 시간을 두어서 다른 사람에게 부정함이 전가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3-8).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 법적으로는 의인입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죄와 부정함에 대해서 회개함으로 정결한 백성으로서의 하나님 앞에 서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회개를 단순히, 죄에 대해 편안해 질 수 있는 위로의 수단이나 자유의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극히 회개를 종교적 제사로만 인식한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제물을 드리고도 정결해지기까지 일정한 부정한 시간을 유지하며 피를 뿌려 회막 앞을 정결하게 하고 옷을 빨고 몸을 씻는 것은, 오늘날에도 생활 전반에 걸친 반성과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하면 회개는 죄에서 내가 무책임할 수 있는 통과의례가 아니라, 나의 생활 전반을 점검하고 완전히 과거와 청산하고 새로운 삶으로 돌이켜야 하는 신앙적 고뇌와 몸부림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스로 죄에서 자유할 수 없는 우리가 매일 하나님 앞에 희생제물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히9:22). 희생제물의 피흘림은 곧 죄사함이고 정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을 통해 암송아지의 피를 찍어 회막 앞에 일곱 번 뿌리도록 하십니다(4). 그리고 암송아지의 남은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살라 재를 만들도록 하고,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불사르는 가운데 던지도록 하였습니다(5-6). 일반적으로 속죄제와 같은 경우에는 번제단 밑에 피를 쏟아 붓도록 하였지만(레4:7, 18, 25). 정결예식에서 부정함을 씻는 물을 만들기 위해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뿌리고 남은 피와 희생제물의 남은 부산물을 완전히 불태워 재로 만들어야 했습니다(15). 특히, 제물을 불살라 드리는 가운데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함께 태워 드리도록 한 것은, 죄에 대한 정결예식을 통해(우슬초)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백향목), 이는 희생제물의 피, 즉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서 가능하다는(홍색 실)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암송아지의 피와 가죽과 남은 고기를 태운 후에 그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두어 온 회중을 위하여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남겨두라고 하시며 이는 곧 속죄제라고 말씀하십니다(9). 이를 속죄제라고 말씀하신 것은 레위기에서 말씀하신 속죄제와 같은 의미가 아니라 속죄의 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모든 백성이 정결하기를 원하시고 어떤 부정함도 삶 속에서 몰아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성도다워지고, 교회다워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같은 마음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의 완전히 죄값을 완전히 사해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히9:13-15). 구약의 희생제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일뿐입니다. 유대인이고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는 자마다 영원히 율례의 완성이 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을 입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에 더욱더 마음과 행위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세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영원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구속함을 입은 성도로서 죄에 대하여 더욱더 민감하게 하시고, 합당한 언행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