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22 (토)
■ 민수기 18:21-32
[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 ]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대신하여 레위자손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성소에서의 직무를 맡기신 것은 특별히 레위자손을 높이신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들에게 소제와 속죄제와 화목제의 거제물뿐만 아니라 처음 난 소출과 십일조까지 레위 자손에게 기업을 주신 것은 레위자손에 대한 특혜도 아닙니다(24). 많은 육체의 것들을 내려놓고 성소에서 하나님의 정하신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서는 부정한 것이 있을 경우 죽임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걸고 직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백성들이 레위인과 제사장 외에 성소를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라는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17:13). 죄값으로 인해 회막에 가까이 할 경우 죽임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22). 특별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례에 따라 정결의식을 행하고, 성결하고 거룩한 몸과 마음으로 직무를 감당해야 하는 레위자손들로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소유로 살았던 것만큼 평생 자기를 희생하며 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레위자손이 회막에서 봉사하는 일에 대한 엄중함과 이스라엘 다른 족속과 같이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자기를 위해 일할 수 없도록 하신 것에 대해 오늘 성경에서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23).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들은 자신들의 땅도 분배받지 못했으며, 특정한 거주지가 없이 각 지파에 흩어져 살아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아시고 회막에서 하는 일의 수고를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21). 광야와 같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며 복음전파를 위해 진력하는 하나님의 종들뿐만 아니라, 포괄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입고 그리스도의 피로 성별된 모든 성도가 세상사람들과 구별된 레위자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의지하는 권세와 물질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은혜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24). 이는 모든 백성이 레위자손이 성소의 직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합동해야 한다는 의미도 되지만, 하나님 앞에 구별된 레위자손이 사사로이 육체의 것을 탐하거나 소유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오직 하나님만을 기업을 삼아야 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십일조는 고대 근동에서는 왕에게 바치는 세금의 성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성막이나 성전에 내는 성전세로 징수하였습니다. 매년 드리는 곡식의 십일조와 짐승의 초태생은 중앙 성고를 위한 십일조가 되었지만(신14:22-29), 삼 년에 한 번 드리는 십일조는 지방에 사는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를 위한 십일조가 되었습니다(신14:28-29). 그러므로 십일조는 교회를 세워가기 위한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며,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종들뿐만 아니라 고아와 과부를 돌보도록 정하신 엄중한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복을 받고 몇배로 채워주신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 말입니다. 오늘날 십일조에 대한 부수적인 복만을 강조하므로 오히려 본질이 퇴색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택하신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풍요의 신이며 물질의 신이라 할 수 있는 바알을 섬기며 타락했듯이, 오늘 십일조를 통해 "나는 물질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입니다"라는 신앙적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바알을 섬기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즉, 복 받기위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성도로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꾼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성도로서의 중요한 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그것을 레위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하는 것도 이미 구약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구절은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라고 기록된 말씀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엡2:15). 그러나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 말한 것은 선민이라 자청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에 관한 것을 말하면서 언급한 것입니다. 또한, 그냥 '율법'이라고 하지 않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이라는 해설을 단 것은, 율법의 조문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으나 율법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17-18). 황금만능주의에 젖은 세상의 논리를 따라가는 인생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성결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십일조와 레위인에 관해 정하신 것이 신약에서 폐기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바울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역설한 바있습니다(고전9:13-14). 또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딤전5:17-18). 사도바울이 말하는 장로란 오늘날의 장로가 아니라 목사를 말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낸 십일조를 하나님께서 다시 레위인들에게 주어 그들이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셨다고해서, 레위인에게는 십일조의 의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인에게도 십일조는 의무입니다. 레위인에게 십일조로 받은 것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리도록 명령하십니다(26).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거제로 드린 것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리셨습니다. 거제는 올렸다 내렸다하며 드리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다시 하나님의 것으로 제사장에게 주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헌물로 받은 것 가운데서 아름다운 것, 즉 거룩하게 구별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라고 하십니다(27-29). 그리고 레위인과 제사장이 그러한 거제물을 취한 것에 대해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31). 하나님의 종을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드려야할 것을 하나님 앞에 성도로서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시 하나님의 것으로 종에게 섬기는 삯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말미암아 죄를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32). 인생을 다 바쳐 전적으로 희생하는 것은 레위지손의 의무이며, 그러한 희생 대신에 하나님 앞에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은 백성의 의무라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시고, 내 대신 죄값을 치르시고 희생제물이 되신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성도로서의 의무를 다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면서도 물질에 대한 탐심을 청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지 못한 무지에서 벗어나, 십일조의 의미를 깨닫게 하셨사오니 지혜로운 자로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사명을 마음다해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