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5 (주일)
■ 열왕기상 21:1-10
[ 하나님의 기업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아람왕 벤하닷을 살려준 것에 대하여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 하리라"고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20:42), 아합은 근심하고 답답하였지만 정작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 또한 악인의 모습입니다. 앞으로의 당할 심판과 고통을 생각하기 보다는 지금 누리고 있는 부귀와 영화에 취해 있으며, 심판의 경고에 근심하지만 그것이 지금 회개하고 돌이킬만한 절박한 마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 그것은 아합이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은 후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심령은 더욱더 큰 죄의 미혹을 받게 됩니다. 그는 왕궁 곁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에 대한 욕심을 품습니다. 물론, 그가 나봇에게 한 제안은 왕으로서 정중했고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일방적으로 빼앗지 않고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고 제안했기 때문입니다(2). 이러한 아합의 모습을 보며 그가 강제로 포도원을 빼앗을 만큼 사악하지는 않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사악함을 감투려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이미 이세벨을 통해서도 증거되고 있지만, 만일 그러한 제안을 수락하지 않을 경우 죽여서라도 빼앗는 것이 사탄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땅에 관한 거래"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종이 된 악한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접근하고 미혹하는 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땅에 관한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돈에 대한 거래"입니다. 하나님께서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25:23).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도 그 땅에서 "너희는 거류민"이라고 말씀하시며, 땅을 매매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은, 가나안이 이스라엘 백성이 영원히 거주할 땅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소유로서 사사로이 소유로 여기고 매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은 개인적으로 매매하거나 소유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며, 돈과 바꿀 수 없는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돈과 약속을 결코 바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돈을 가장 큰 가치로 여깁니다. 그것을 안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더 좋은 것', '그 값을 돈으로 주리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봇은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아합의 제안을 단 번에 거절합니다. "더 좋은 포도원"과 원하면 "그 값을 돈으로 주리라"는 아합 왕의 제안은 나봇으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돈과 권세를 모두 가진 왕에게 자신이 가진 땅을 비싼 값에 넘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나봇은 돈보다는 하나님께서 약속 가운데 주신 기업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고,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 일임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만 그 가치를 발할 수 있습니다. 내게 맡기신 것을 나의 소유로 생각하고 더 좋은 것과 더 많은 돈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아합과 같은 악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봇은 아합 왕에게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고 말합니다(3). 나봇이 먼저 생각하는 것은 '더 좋은 것'이나 '더 많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이것은 말씀 앞에서 이해득실을 따져 순종하려는 우리들의 모습을 부끄럽게 합니다. 그는 비록 이세벨에 의해 돌로 쳐죽임을 당했고 포도원을 빼앗긴 것처럼 보이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기업은 빼앗기지 않은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빼앗기지 않음으로 오히려 모든 것을 얻은 자가 된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일시적으로 그 포도원을 강제하여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합도 이세벨도 결국 처참한 죽음에 이르고, 음부에서 신음하며 영원을 보낸다는 사실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토지를 팔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하여서 혹 토지를 팔 경우에는 친족이 대신 무르도록 하여 그 땅을 되찾도록 하였고, 본인도 친족도 그것을 갚을 능력이 안 되어 계속 무르기를 요청할 경우 수락해야 했습니다. 또한, 도무지 무를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희년에 돌려 줄 것을 율법에 정하여서, 땅은 이스라엘 백성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하셨기 때문입니다(레25:23-28). 오늘 우리는 돈 앞에서 권세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굳건히 지키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던 나봇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합은 이러한 나봇의 신앙 앞에서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못할 지경이었습니다(4). 그러나 그것은 나봇의 포도원을 얻지 못하는 실망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분노를 스스로 주체하지 못한 패역과 완악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합의 모습은 이미 이세벨이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완악함은 그의 아내가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일을 묵인하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달콤한 것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 속내는 결국 파멸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붙드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아합이 근심하는 것을 보며 그의 아내 이세벨이 이유를 묻습니다(5). 아합은 이세벨에게 그가 근심하며 답답해 하며 식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나봇이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포도원을 팔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지 않고, 왕의 권세를 무시하고 호의를 거절한 것처럼만 왜곡하여서 전합니다(6).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왕은 아합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자신의 소유가 아니면서도 나봇의 포도원을 왕에게 주겠다고 약속합니다(7). 그리고 이세벨은 거짓 증인들을 세워 나봇이 왕과 하나님을 저주하였다고 모함하여 돌로 쳐 죽이게 합니다. 이세벨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신 추악한 권력의 속성을 모두 갖춘 여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들의 형제요 백성들을 섬기는 자이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시고 통치받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세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합이 아니라 자신이 왕인 것처럼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나봇의 생명을 함부로 죽이고 그의 땅을 불법으로 빼앗았습니다. 이것이 탐욕의 신 바알과 아세라 숭배자들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에도 회개할 줄 모르고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기에, 이 세상은 힘과 소유와 쾌락을 숭배하며 자신의 유익을 위해 누구든지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자비한 사람들입니다(7-10). 나봇의 포도원을 얻기 위한 아합의 제안은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으려는 사탄의 값싼 제안입니다. 그리고 그 제안에 미혹받지 않는 자들을 모함하고 그들의 진실을 왜곡하여 파멸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안에 미혹 받아서도 안 되고, 그들의 권세와 부귀 앞에서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에게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7). 그녀의 말은 "당신이 이러고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즉, 아합 왕에게는 빼앗을 권세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세벨은 왕의 이름으로 그의 인장까지 도용하여 나봇이 살고 있는 성읍의 장로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한편, 불량자들을 동원하여 거짓증언하게 함으로서 나봇을 무고하게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9-10). 그녀는 금식을 선포하고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고 증인을 채택하여 증언하게 하는 등, 철저히 종교적 절차와 법률에 따른 정당한 심판인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아합과 이세벨의 행위는 마땅히 심판받을 스스로의 사형선고와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나봇을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음마저도 감수한 의인으로, 아합과 이세벨을 마땅히 심판받을 악인으로 기록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악인의 미혹과 핍박 앞에서 믿음을 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내 눈 앞에 물질적 유익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팔아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은 자로서의 자존감과 거룩함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