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고원" 번역 과정의 몇 가지 에피소드

armdown(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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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가 함게 쓴 "천 개의 고원"은 어렵다. 물론 부분적으로 쉬운 대목도 있고 저자들도 아무 데서부터나 읽으라고 권하고 있지만, 그건 저자니까 할 수 있는 말일 뿐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책은 아주 까다롭다. 역자의 입장에서도 저자를 따라 아무 데서부터나 읽으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독자들을 속이지 않기 위해 솔직히 말한다면 이 책은 정말 어렵다.

한번은 출판사에서 번역이 읽히지 않는다 하여 번역의 어떤 부분을 임의로 고쳤다. 그런데 고친 원고를 제3자가 원문 대조하여 검토한 결과 거의 역자가 원래 번역했던 상태 비슷하게 돌아왔다. 읽히지 않는 것은 원문이었지 번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마땅한 입문서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원전은 원전을 통해 독파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은 아주 다양한 입구를 갖고 있다. 수학, 음악, 전쟁, 건축, 뜨개질, 문학, 항해, 지리, 미술, 기술, 물리학, 화학, 지질학, 언어학, 경제, 장식, 기호학, 정신분석, 생물학, 정보이론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분야를 그것도 꽤나 깊이 있게 비판적으로 망라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는 자신에게 친숙한 곳을 통해 이 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역자로서 이런 괴물 같은 책을 번역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도 번역은 끝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역자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고른 번역 수준을 갖추는 일이었다. 위에 열거한 각 분야를 가급적 깊이 이해하면서 번역을 수행하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무의미한 작업이 되겠기에. 그래서 번역 작업은 마냥 늦어졌다.

주위에서 여러 가지로 도와주긴 했지만 번역과 관련해서 실제적인 도움은 거의 받지 못했다. 한번은 교정지 가득 빨갛게 문제제기가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실제로 쓸모 있는 지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지엽적인 지적이거나 틀린 지적이었다. 그러나 역자로서는 혹시나 해서 일일이 원문 대조를 하느라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런 허망한 작업만도 몇 달이 걸렸다.

책을 그냥 상품으로만 본다면 독자들이 그 책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책이란 사상을 전달하는 하나의 외피일 뿐이다. 사상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삶으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책에는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역자가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가장 당부하는 것이 이 점이다.

"천 개의 고원"은 자기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만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찾지 않는 자에게 새로운 삶은 결코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 만들기 전에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삶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뭔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뭔가 깊은 오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의 궁극적 메시지는 ‘자신을 만들어라’라고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만드는 것은 세상을 만드는 것을 통해서만 우회적으로 완성된다. 세상은 자신의 일부이며 자신은 세상의 꼭 필요한 일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