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립반윙클의 신부> 후기
삶에서 늘 조용하고 어쩌면 답답하다 여길만큼
스스로를 닫고 사는 나나미는 플래닛 안에서만큼은 와글거린다.
그 간극은 갑작스런 결혼으로 메워지는 듯했으나
돌뿌리같은 현실에 턱, 걸려 주저앉는다.
그리고 그녀는 쓰던 아이디를 바꾸고 더 깊이,
랜선 안으로 들어간다. 캄파넬라, 라는 아이디로.
그때 만난 또 다른 랜선친구 아무로.
클램본의 친구라면, 이라는 단서를 붙여 늘 친절하다.
나나미는 힘들거나 곤란해지면 아무로부터 떠올릴만큼 그에게 의지를 많이 한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점점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
랜선 사이를 퐁당거리며 디디다가 만난 또 다른 사람 '립반윙클' 마시로.
그녀를 만나고부터 나나미는 조금씩 변해간다.
조금 덜 답답하고 조금 더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으로. 느리지만 참 예뻤다.
중학생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던 목소리는 이제 그녀를 하나씩 보여주는 수단이 됐다.
랜선에서 만나는 이들이 얄팍한 게 아니라,
얄팍한 사람들이 랜선을 유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영화에도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니까.
영화는 그런 것들을 잘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보여지는 나와 그저 나, 그 사이의 거리는 얼만큼이어야 좋을까.
인터넷의 나와 현실의 나,
간극이 별로 없지만 (와글거림 빼고)
그럼에도 후자의 모습을 전자가 많이 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후반부 마시로와 나나미가 나누는 대화장면.
마시로는 말한다.
"이 세상은 사실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
모든 사람들이 잘 대해 주거든.
택배 아저씨는 내가 부탁한 곳까지 무거운 짐을 날라주지.
비오는 날에는 모르는 사람이 우산을 준 적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쉽게 행복해지면 나는 부서져 버려.
그래서 차라리 돈을 내고 사는 게 편해.
돈은 분명히 그런 걸 위해 존재할 거야.
사람들의 진심이나 친절함 등이 너무 또렷이 보이면
사람들은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워서 다들 부서지고 말 걸?
그래서 모두 돈으로 대신하며 그런 걸 보지 않은 척하는 거야."
그리고 엔딩곡. 코코(마시로)의 목소리로 듣는 멜로디와 가사에 펑펑 울고 말았다.
이런 가사가 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요, 그건 내게 너무 커다란 세계니까.'
이 두 가지가 마음을 완전히 건드렸다.
내 마음과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구나,
그걸 이렇게 표현해주는 사람도 있구나.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크고 벅차서 거
기까지는 말해주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늘 말해왔던,
그 마음이 오롯이 보여지기도 하는구나.
마시로가 나의 필경사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