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불문하고 이토록 많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에도 있었을까요.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신자가 아니지만, 저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는 호감을 느낍니다.
그가 지나친 이상주의자라고요? 현실주의자가 넘쳐나는 세상에, 묵직한 이상주의자 하나쯤 있어도 되잖아요. 더군다나 종교 지도자가 너무 현실주의자라도 좀 이상하잖아요.
아시겠지만, 그는 진보주의자이기도 합니다. 가톨릭 내부에서는 “너무 진보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고 해요. 진화론까지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요. 대단한 양반입니다.
동시에 교계 밖에서는 “그래도 결국 보수”라는 평도 나옵니다. 몇몇 가치에서 완고한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입니다. 종교인이 낙태에 찬성할 수는 없겠지요. 여성 사제 불가론은 신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 됐든 그 사람 좋은 웃음, 빈자와 아이를 대하는 가식 없는 모습을 외신에서 접할 때면, 참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싶어요. 골방에서 암투를 벌이는지, 아닌지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요.
매력남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최근 호주, 칠레,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가톨릭 성직자들이 어린이 성학대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연쇄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에 밝혀진 펜실베이니아주 교구 성추문은 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1940년대부터 70년간 성직자 301명이 1000명 넘는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했고, 교구는 사건을 은폐한 것입니다. 주여.
세계의 영적인 지도자라는 그의 입지가 흔들립니다. 네, 프란치스코 교황 본인이 직접적인 죄악을 범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가톨릭의 수장인 그가 휘하 성직자의 악행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대장이란 그런 거죠.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교황청 서열 3위, 조지 펠 교황청 국무원장(추기경)이 아동 성학대 혐의로 호주에서 재판받고 있다는 사실도 교황에게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끝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전 세계 신자들에게 사과 서한을 썼습니다. 교황이 사제 성추행을 인정하는 서신을 신자에게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펜실베이니아주 성 학대가 불거진 게 14일이었으니까, 꽤 장고한 모양입니다. 그전까지는 추기경들에게만 성추문 관련 서신을 보냈다지요. 그 또한 투명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아무튼 그는 이 서한에 “우리는 어린 신자를 보살피지 않았고, 아이들을 저버렸다”고 잘못을 시인했고 “범죄나 범죄 은폐 행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는 ‘무관용’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고 적었습니다.
그럴듯한 말입니다. 듣기 좋은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운 말들을 늘어놓은 서신에 알맹이는 없었습니다. 이 참담한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펜실베이니아 성학대 생존자인 마리 콜린스는 “교황청이나 교황으로부터 ‘성학대가 끔찍했으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따위의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가해자들이 어떻게 책임을 지게 할 것인지를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25~26일 아일랜드를 방문합니다. 아일랜드 교회의 ‘아동 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일랜드에서 1975~2011년 아동 성학대에 연루된 성직자는 85명에 이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아일랜드 방문 기간에 성학대 피해자들을 만납니다. 지금까지 성추문에 대처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