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선생은 작가 김훈이다. 나는 그를 딱 한 번 만났고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내 멋대로 김훈을 사사했다고 여긴다.
김훈의 문장은 대단했다. 나는 그와 같은 문장을 쓰고 싶었다. 소설 칼의 노래를 통째로 필사했다. 내 몸에 새기듯 그의 문장을 만년필로 공책에 써 내려갔다.
기자 시험을 준비할 때브터 그의 수필집을 베껴 썼다. 그때 칼의 노래 필사를 병행했는지 아니면 입사하고 나서 했는지는 헷갈린다. 아무튼 나는 수년간 김훈을 필사했다.
인간 김훈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김훈이 아니라 김훈의 문장이었으므로 굳이 김훈을 만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논지에서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나는 글에 인품이 묻어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럴듯한 글을 쓰는 인간말종이 너무 많다. 기자가 되고 그런 인간들을 수도 없이 봤다.
작년 겨울이었던가, 회사 행사에 김훈이 왔다. 나는 거기에 갔다. 그는 한 30분쯤 이런저런 말을 했다. 주로 현실과 글의 메꿀 수 없는 간극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날 그가 한 말은 대부분 그가 쓴 수필의 범주 안에 있었다. 나는 그의 수필을 거의 다 읽었다. 내게는 그리 특별하지도, 대단히 실망스럽지도 않은 그저 그런 자리였다.
김훈이 말을 다 하고 질문하라고 했다. 나는 손을 들고 “선생님은 역사적 사건에 기반해 많은 작품을 쓰셨다. 작금의 상황(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으로 소설을 쓸 계획은 없으신가”라고 물었다.
김훈은 고개를 저으면서 그것은 자신의 능력은 벗어나는 사건이라고 후대에 더 뛰어난 작가가 글로 써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정유라의) 말 한 마리가 세상을 뒤집어 놓는구나, 생각했다”는 얘기도 했던 것 같다.
김훈의 대답을 듣고 내가 질문을 잘못했구나 싶었다. 뜬구름 잡는 질문 대신 더 뛰어난 문장을 쓰는 방법은 무엇인지 좋은 문장을 쓰려고 당신은 어떤 노력을 하는지 물었더라면 좋았겠다 싶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사인회가 열렸다. 나는 저 멀리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행사를 주최한 회사 선배가 나를 불러 사인을 받으라고 했다. 나는 줄의 맨 끝에 가 섰다.
김훈이 남한산성 속지에 서명했다. 펜을 잡은 그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와 중지의 손톱이 게 등딱지처럼 흉측했다. 그것은 빠지고 나고, 빠지고 나기를 반복한 손톱이었다. 흉측하지만 아름다운 손톱이었다.
좋은 문장을 쓰는 법을 묻지 않은 것이 아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톱으로 그 방법을 말하고 있었다. 김훈은 여전히 연필로 원고지에 글을 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