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샤 마이스키는 아마 역사상 최고의 첼리스트는 아닐 것입니다. 로스트로포비치, 슈타커, 뒤 프레, 푸르니에, 그리고 카잘스 같은 거인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마이스키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첼리스트입니다. 그의 첼로는 마치 노래하는 것 같아요.
마이스키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저는 카잘스의 것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에 입문했습니다. 카잘스의 연주는 LP 였어요. CD가 필요했습니다. 등하굣길에 CD플레이어에 넣고 다니면서 들을 CD 말입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CD를 사오셨어요. 저는 카잘스의 것을 사오실 줄 알았는데, 아녔습니다. 아마 LP가 있는데 같은 것을 또 살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새하얀 앨범 표지 정중앙에 뽀글머리를 한, 수염난 사내가 첼로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우측 상단에는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도이치 그라모폰의 노란 라벨이 달려 있었지요.
마이스키였습니다. 저는 그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거짓말 좀 보태, 씨디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이 곡은 비가 올 때 찾아 듣는 레퍼토리 중에 하나이기도 해요. 그의 첼로는 가끔 너무 멜랑꼴리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만, 그러거나말거나. 저는 좋아합니다. 그의 연주가 좋고, 그의 왼손이 첼로 현을 오갈 때 들리는 마찰음이 좋고, 중간중간 섞인 그의 호흡이 좋아요.
다시 우연한 일로, 마이스키라는 인간 자체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아마 KBS였을 거예요. 그의 다큐멘터리였는지 아니면 공연 녹화 중계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아무튼 내한 당시에 일이에요.
공연을 마친 마이스키는 앙코르를 요청하는 청중을 향해 일어서서 꾸벅 인사를 합니다. 그가 양손을 들어 양해를 구했는지는 역시 기억이 안 나요. 그는 뒤로 돌아서 앉습니다. 그리고는 공연 내내 자신의 뒤통수만 바라보아야 했을 관객을 향한 채 앙코르곡을 연주합니다.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 마이스키는 또 말입니다. 고초를 겪은 음악가예요. 그는 라트비아 출신의 유대인이에요. 어려서부터 촉망받았죠. 레닌그라드에서 음악을 공부했어요. ‘차세대 로스트로포비치’라고 불렸고요. 로스트로포비치와 피아티고르스키를 사사한 유일한 첼리스트이기도 합니다.
평탄할 것 같았던 마이스키의 음악적 삶은, 그의 누나가 이스라엘로 망명한 이듬해인 1970년 큰 위기에 처하게 돼요. 소비에드 연방 당국이 이 일의 책임을 물어 마이스키를 체포했어요. 그리고 그를 고르키의 노동수용소로 보내버렸습니다. 18개월 후 출소한 그에게 소련은 군대에 갈 것을 명령합니다. 첼리스트에게 첼로 대신 총을 쥐라니.
마이스키의 주치의가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 버립니다. 군대에 안 보내려는 고육지책이었죠. 정신병원에 2개월쯤 입원했었다고 해요. 1972년 당국이 그의 출국을 허락하자, 그는 미련 없이 이스라엘에 망명합니다. 그리고 다시 첼로를 듭니다. 다행이죠. 그에게도, 저희에게도.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1번 프렐류드는 너무 익숙하실 것 같아 다른 곡으로 골랐어요. 6번 모음곡의 문을 여는 프렐류드입니다. 1번의 프렐류드와는 사뭇 다를 거예요. 어렵기로 유명한 곡인데, 마이스키는 참으로 유려하게 연주합니다.
마이스키가 얼마 전 신보 ‘Adagietto’를 내놨어요. 마이스키는 이 앨범에 무려 말러 5번 아다지에토를 편곡해 넣었습니다. 서정적이기로 유명한 곡이지요. 그의 첼로로 들으니 또 다른 맛이 있습니다. 가을이라 더 손이 가요.
마이스키를 소개하면서 이곡을 빼놓으면 안 되겠죠. 그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입니다. 마이스키와 보칼리제라니. 멜랑꼴리라는 것이 폭발합니다. 백개의 문장이 한 번 듣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들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