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거물 보수 정치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영면했습니다. 82세.
저는 그의 부고 기사를 썼습니다. 기사를 쓰면서, 저는 이런 정치인을 가진 미국이라는 나라를 부러워했습니다. 저는 또 미국이 두려웠습니다. 이런 인재가 있다는 것이 초강대국 미국의 저력이로구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자가 대통령이 됐어도 나라가 굴러가는 것은 미국의 그 저력 덕분이로구나.
매케인 하면 베트남전 포로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어요. 그는 대단한 군인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베트남전이 일어나자, 그도 당연히 참전했지요. 그는 해군 전투기 조종사였습니다. 1967년 그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격추당했습니다. 그리고 붙잡혀 5년간 포로 생활을 합니다. 하도 심하게 고문당해서 평생 두 팔을 어깨 위로 올리지 못하게 됐어요. 한쪽 다리도 절었습니다.
매케인이 포로로 잡혔을 때 매케인의 아버지는 태평양사령관이었습니다. 월맹군은 협상용 카드로 매케인의 석방을 제안했습니다. 매케인의 아버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케인이 잡혀 있던 하노이를 폭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 것이 매케인도 석방을 거부했어요. 나보다 먼저 잡힌 포로가 석방된 후에 나도 나가겠다고 했다던가요. 매케인의 아들도 이라크전에 해군 장교로 참전했다지요.
매케인은 사망 얼마 전인 지난해 7월,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뇌종양 수술 직후 미국 워싱턴DC의 의회에 등장해 ‘오바마케어’ 폐기 표결에 참석했습니다. 오바마케어 폐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1호 공약이었어요. 공화당에서도 폐기하려고 뜻을 모았죠.
의회에 등장한 그의 왼쪽 눈썹 위에는 수술 자국이 선명했어요. 오바마케어는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핵심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매케인은 개인적 감정, 당리당략을 떠난 결정을 했습니다. 폐지 반대에 표를 던진 겁니다. 당장 오바마케어를 폐기하면 대안이 없다는 이유였어요.
그는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습니다. 200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조지 W 부시에게 졌고요. 2008년에는 대선 본선에서 민주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졌어요. 좀 지면 어떤가요. 살다보면 이기기도, 지기도 하는 것을요. 승리보다 값진 것, 그가 남긴 것을 좀 보세요.
매케인이 영웅이었으며, 이상적인 인간이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는 완전무결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란 본디 그럴 수 없는 존재이지요. 하지만 그는 적어도 훌륭한 정치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귀족, 귀족주의.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적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특히 귀족이라는 낙인이 찍힌 정치인은 아마 평생 대권을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아 아니구나 박X혜. 저는 매케인에게서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귀족을 봤어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랄까요. 우리로 치면 꼬장꼬장한 선비, 진짜 양반 같은.
부럽습니다. 우리네 그 많던 진짜 양반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훌륭한 분들은 일제와 싸우다 산화하고, 남북전쟁 와중에 반동으로 몰려 죽고. 그리고 군정, 유신... 그 유구한 아사리판을 거치면서 “아 귀족이고 나발이고 결국 살아남으려면 기회를 잘 엿보아야 하는 것”,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따위의 정서가 팽배해진 것은 아닐까. 그것이 유전된 것은 아닐까.
매케인은 지난해 9월 CNN과의 고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항상 옳았던 것은 아녔고 실수도 여러 번 했지만, 명예롭게 나라에 봉사한 사람.” 그는 그렇게 기억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