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못쓴] 박근혜와 함께한 토요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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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로서 내가 본 촛불집회의 몇 장면을 기록으로 남긴다. 최대한 자료에 의존할 것이나, 기억이 뒤섞여 있을 수 있다. 탄핵 전이므로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쓴다.

2016.12.10. 7차 촛불집회는 축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가 가결한 이후 열린 첫 촛불집회였다. 그래서였을까. 집회의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시민들이 웃었다. 인터뷰한 시민들의 입에서 “기쁘다”는 말이 나왔다. 나도 조금 그 분위기에 취했던 것 같다. 오라지게 추웠는데도 주최 측 추산 서울 광화문에 80만명, 전국 104만명이 운집했다. 경찰은 광화문에 14만, 전국 16만 6000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신나서 서울 왔당께

시민 A는 “전라도 광주에서 매주 집회에 참여했다. 탄핵안이 가결돼 신이 나 서울까지 올라왔다. 오늘 집회는 축제”라고 말했다. 시민 B도 광주에서 왔다. 그는 “민주주의가 이긴 역사적 순간을 국민과 함께 나누고 싶어 아들과 왔다. 기쁘다”고 했다. 공무원 C는 “탄핵안 가결에 대찬성한다. 박 대통령이 (대법원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물러나는 게 맞다”고 했다.

태극기가 나타났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7차 집회부터 태극기가 등장했다. 이날 박근혜를사모하는모임(박사모) 회원 30여명이 태극기를 들고 종로구 통인동에서 박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는 국회를 규탄하는 시위를 했다. 촛불시민들이 박사모를 에워쌌다. 양측에서 날 선 단어가 오갔다. 경찰이 가운데 끼어들어 촛불과 박사모를 분리하고 박사모를 통의동 밖으로 후퇴하게 했다.

‘근혜와의 전쟁’

참으로 우리 민족은 풍자와 해악의 민족인 것이었다. 시민들은 경찰 차벽에 영화를 패러디한 각종 포스터를 붙였는데, 그것이 기발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은 근혜와의 전쟁으로 다시 태어났고, 간신의 포스터에는 박 대통령, 최순실씨 등의 얼굴을 합성해 넣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등장했다. 고스트 버스터즈를 비튼 박근혜 버스터즈도 있었다.

이은미의 애국가

오후 6시쯤 본 집회를 시작했다. 가수 이은미씨가 애국가를 불렀다. 무반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민들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이씨가 “동해 물과 백두산이”를 부를 때 나는 인터뷰를 멈춰야만 했다. “우리나라 만세”라고 할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광화문 광장은 촛불의 주홍 불빛으로 물들었고, 밤하늘이 새까맸다. 가수 권진원·DJ DOC, 방송인 김제동도 무대에 올랐다.

가자 청와대로

본 집회가 끝나고 오후 8시쯤 행진을 시작했다. 도도한 촛불의 파도가 청와대를 향했다. 촛불은 청와대 200m 앞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들어갔다. 시민 D는 “우리 아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며 울먹였다. 시민 E는 “박 대통령이 시끄러워서 드라마 못 보게 더 크게 구호를 외칠 것”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은 공식행사가 끝난 오후 9시 30분에 탄핵안 가결을 자축하는 폭죽을 터뜨렸다.

아! 세월호

세월호 유가족은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파란 고래 풍선을 띄웠다. 유가족들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핫팩과 빵, 뜨거운 물을 나눠줬다. ‘이젠 한걸음, 우린 지치지 않는다. 세월호 엄마 아빠는 촛불 국민과 함께 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글을 쓴 현수막도 내걸었다. 시민 E는 “촛불에는 정권에 대한 분노뿐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도 들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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