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월드컵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이 끝났다. 월드컵이 열린 한달여 동안 전 세계에서 수십만명이 러시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9개 도시를 방문해 축구를 즐겼다.
소소한 사건·사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질서정연한 대회였다. 푸틴 대통령에게는 안팎으로 좋은 기회였다. 세계 정상들을 러시아로 초대해 폼도 좀 잡고, ‘축구’라는 아편에 인민을 취하게 해 경제난 등 불만도 좀 불식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돈벌이도 좀 됐고, 또 될 모양이다. 러시아 관광청은 올해 관광객 수가 지난해보다 25%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 정부는 월드컵 후광으로 러시아의 올 3/4분기 국내총생산(GDP)도 0.2%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래저래 푸틴의 치세가 만세일 것만 같다.
그런데, 아니다.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세다. 월드컵 개막 2주 차에 진행한 설문에서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종전 설문의 79%에서 7%포인트 하락한 72%였다. 가상의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 대통령을 뽑겠다는 응답은 54%였다. 같은 질문에서 푸틴 대통령을 선택하겠다는 대답이 6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최근 5년 내 처음이었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러시아 국민의 48%만이 푸틴 대통령을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러시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대답은 46%에 그쳤다. 당장은 월드컵의 열기가 러시아 인민의 불만을 덮었지만, 앞으로 응축된 분노가 터져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차르(제정 러시아 황제)에 비견되곤 했던, 러시아의 절대권력 푸틴 대통령의 인기가 왜 떨어진 것일까. 빵 문제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인민의 ‘역린’ 연금을 건드렸다. 교묘하게도 월드컵 개막일이었던 지난달 14일, 러시아 정부는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개혁안의 골자는 현행 남성 60세, 여성 55세의 연금 수급 연령을 남성 65세, 여성 63세로 올리는 것이다. 러시아 남녀 기대수명은 각각 66세, 77세다. 개혁안대로 연금 수급 연령이 조정되면 수많은 러시아 인민이 연금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결국 지난 1일 러시아 30개 도시에서 반(反)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시민 수천명이 각지에서 “우리 주머니에서 돈을 긁어모으지 말라”, “죽기 전에 연금을 받고 싶다” 등 구호를 외쳤다. 현지 일간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는 “푸틴 대통령의 20년 통치 중 가장 위험한 개혁”이라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14년 3월 당시 친러시아가 아닌 친서방 노선을 채택한 우크라이나를 억제하려고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한다고 선포했다. 또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반군의 무장 투쟁을 지원했다.
러시아 인민들은 강경한 행보로 러시아의 자존감을 높여준 푸틴 대통령에 환호했다. 크림반도 병합 2개월 만에 푸틴 대통령 지지율은 60%대에서 80%로 치솟았다. 이후 저유가, 서방의 제재 등으로 경제난을 겪었으나 러시아 인민은 강한 지도자 푸틴 대통령을 여전히 사랑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는 것일까. 빵이 사랑보다 위대한 것일까. 푸틴 대통령에게 더는 병합할 반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제2의 우크라이나도 없다. 푸틴 대통령은 연금 개혁안이 촉발한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그는 어디서 활로를 찾을 것인가. 내전 중인 시리아? 적당히 구워 삶을 수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