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목요일이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 마실 술을 사야 할 목요일이다.
액체가 군청색 사각 유리병 안에서 찰랑인다. 심해를 옮겨놓은 것만 같다. 멋드러진 문양을 양각으로 새겼다. 핑크골드빛 마개가 병 주둥이 끄트머리에서 반짝인다. 생김새에 기품이 있다. 향수병 아니다. 술병이다.
싱글 그레인 위스키 ‘헤이그 클럽’보다 잘생긴 술병을 본 적이 없다. 잘생긴 술병에 담은 이 술은 잘생긴 전직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주류업체 디아지오와 손잡고 만든 것이다.
싱글 그레인 위스키는 흔히 마시는 몰트·블랜디드 위스키와는 그 원료에서 차이가 난다. 싱글 그레인 위스키에는 맥아가 들어가지 않는다. 호밀, 옥수수 등으로 단일 증류소에서 빚은 술이 바로 싱글 그레인 위스키다.
디아지오 측은 “400년 전통 ‘헤이그’ 가문의 장인 정신과 비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라고 설명한다. 400년이라니 대단하다. 하지만 전통이 맛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니까. 얼른 먹어보자.
뚜껑을 열고 잘생긴 병을 기울인다. 밝은 금빛의 액체가 쏟아진다. 잔에 코를 박는다. 성급했다. 알코올이 코를 찌른다. 알코올이 휘발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냄새를 맡는다. 단내가 난다.
코에서처럼 혀에서도 헤이그 클럽은 달다. 혀의 초입에서는 잘 익은 바나나가 떠오른다. 산뜻하고 가벼운 단맛이다. 목구멍을 향하면서 단맛은 깊어진다. 혀의 중간 즈음에서부터 캐러멜처럼 진하게 달아진다.
보디감은 가볍다. 목넘김이 상당히 부드럽다. 술을 삼킨 뒤 올라오는 풍미는 나쁘다. 별다른 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알코올 기운만 도드라진다. 때때로 불쾌하기까지 하다. 마신 뒤에는 캐러맬향이 입안에 남는다.
전체적으로 풍미가 약하다. 온더록스에서는 단맛마저 움츠러든다. 대신 신선한 향이 부각된다. 당연히 훨씬 부드럽게 넘어간다. 얼음이 녹으면서 밋밋한 술이 더 밋밋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편이 나았다.
전체적으로 달고 목넘김이 순하다. 피트향도 나지 않는다. 양주를 꺼리는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실 만하다. 하지만 몰트나 블랜디드 위스키를 즐기는 술꾼들에게는 좀 심심할 수 있겠다.
해외 위스키 리뷰 사이트에는 호평보다 혹평이 많았다. 휘발유맛이 난다는 평이 있었다. 잘생긴 병을 전등으로 쓰려고 남은 술을 다 버렸다는 글도 보였다. 품질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나왔다.
700㎖ 한 병에 약 8만 5000원선이다. 알코올 도수는 40도. 다시 사 마실 의사는 없다. 잘생긴 놈들이란 역시 겉만 번지르르할 뿐 내실이 없기 일쑤다.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