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열 번쯤 나갔다. 그때 나는 집회가 아니라 일을 하려고 광화문 광장에 나갔다. 거기서 취재를 했다. 촛불집회는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거의 매주 토요일, 총 23번 열렸다.
대부분의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현장에서는 한쪽에 동조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촛불집회 당시에도 그러려고 애를 썼다. 몇 번 울컥하고 말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지난 6일 국정농단 1심에서 직권남용, 강요 등 혐의로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았다. 형량의 많고 적음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박 전 대통령의 1심 판결을 연합뉴스 속로 접했다. 쿵, 촛불집회 당시 내가 했던 작업에 마침표를 찍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본 촛불집회의 몇 장면을 가록으로 남긴다. 최대한 자료에 의존할 것이나, 기억이 뒤섞여 있을 수 있다. 양해를 구한다. 분량이 적지 않을 것이므로 몇 편으로 나눠 쓸까 한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다. 아마 비정기적으로 쓰게 될 것이다. 당시 시점으로 탄핵 전이므로 박 대통령으로 적는다.
처음으로 주최 측 추산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이 모인 대규모 시위였다. 오후 8시쯤 나는 최전방인 내자동 삼거리까지 들어갔다. 경찰 차벽과 시민들이 맞닿아 있었다. 나는 시민 편에 섞여 앞에서 서너 번째 줄에 서 있었다.
경찰 차벽이 앞과 좌, 우를 에워싸고 집회 참가자들의 전진을 막았는데, 뒤에서 시민들은 자꾸 들어왔다. 옴짝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성향 차이가 보였다. 오후 8시쯤 몇몇 시민이 전경의 헬멧, 방패를 빼앗아 대열 뒤쪽으로 넘겼다. 또 다른 시민들은 “하지 마세요. 경찰 헬멧 뺏지 마세요”라고 소리쳤다. 경찰과 시민, 시민과 시민 사이의 긴장이 고조됐다. 작은 불꽃에 폭발해버릴 것 같은 긴장이 감돌았다. 헬멧과 방패를 빼앗아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뒤에서 “비키세요. 햄버거 배달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시민들이 양쪽으로 길을 터줬다. 빨간 50㏄ 스쿠터 한 대가 대열로 들어섰다. 누군가가 “(박근혜 대통령이) 혼자 햄버거도 못 시켜 먹으니까 직접 가져다준답니다”라고 소리쳤다.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와하하.” 팽팽했던 긴장감이 툭 끊어졌다.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오후 11시쯤 20~30대로 보이는 시민 20여명이 경찰 차벽을 타고 올라 넘어갔다. 거기서 웃으면서 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거기 올라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를 본 또 다른 시민들은 “내려와”, “비폭력”, “평화시위” 등의 구호를 외쳤다. 평화 시위를 주장한 시민들은 이쪽에서 폭력을 행사했을 때 경찰 강경 진압의 빌미를 줄까 우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경찰은 나중에 차벽에 오른 40대 남성 한 명을 경찰관 폭행 혐의로 연행했다고 밝혔다.
나는 현장에서 본 내용을 카카오톡으로 사무실 안에 사건 팀장에게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팀장은 나를 비롯한 여러 팀원이 광화문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보내는 내용을 종합해서 30분~1시간 간격으로 기사를 작성해 온라인으로 송고했다.
팀장은 이튿날 0시 30분쯤 회사로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터덜터덜 귀사하면서 나는 청와대 내실에서 내자동 삼거리의 풍경이 보일까, 소리가 들릴까, 지금 박통은 잠을 자고 있을까, 아니면 깨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팀장, 팀원과 인사하고 집에 갔다. 그 시간에 뭘 타고 귀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