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201X년 XX산에서 여학생들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단다. 경찰 수사 마무리 단계래. 네가 XX경찰서 출입이지. 확인 좀 해봐”
선배가 수화기 너머에서 지시했다. 씹던 밥알이 목에 걸렸다. “예. 선배,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선배는 검찰을 통해 이미 기초 취재를 끝냈다. 선배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궁금해 했다. 그는 “피해자들 성적이 좋았대. 몹쓸 짓 당했지만, 비교적 잘 극복해냈다더라. 경찰한테 물어봐”라고 했다. 감동적인 얘기 한 줄을 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것을 알아보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의 신상을 묻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가치판단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XX서 여성청소년과장에게 전화했다. 과장은 “어디서 알았느냐”며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을 들이밀 경우 보통 취재원들은 아니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이 정도 팩트를 들이밀었는데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대답은 곧 그렇다는 말이었다.
피해자 근황을 묻자 신경질적일 만큼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것은 온당한 반응이었다. 내 잘못의 여지가 너무 컸다. 과장은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다면서 “검찰 통해 취재했으면 검찰 발로 쓰시라”며 전화를 끊었다. 선배에게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선배는 선배의 이름과 내 이름을 넣어 기사를 썼다. 그것은 묵직한 단독 기사였으므로, 내 이름을 넣은 것은 선배의 선의였다.
기사의 파장은 컸다. 대다수 매체가 우리 기사를 받아썼다. 이튿날, 낙종한 매체들이 후속 보도 경쟁을 시작했다. 한 언론사는 XX경찰서 앞에서 진 치고 있다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오는 가해자와 그 가족의 기사를 썼다. 나는 팀장으로 피해자 사연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피해자를 상담한 센터를 겨우 알아냈다. 센터는 입구가 잠겨 있었다. 초인종을 눌러 방문 목적을 말했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센터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센터로 가는 길에 또 다른 단독기사를 쓸 생각에 약간 들떴던 것을 반성했다. 팀장에게는 센터까지는 알아냈지만, 추가 취재에 실패했다고 보고했다. 팀장은 그만큼 했으면 됐다고, 고생했다고 말했다.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나는 피해자들은 괜찮을까. 내 이름이 달린 기사가 피해자들의 상처를 후벼 판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생각들이 자꾸만 내 뒤통수를 잡아챘다.
보도가 나가고 좀 지나서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찰과 얘기했다. 취재하면서 나와 언쟁을 높이기도 했던 그였다.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보도 때문에 피해자들 많이 힘들어했나요?”라고 물었다. 경찰은 “처음에는 조금 그랬던 거 같아요. 하지만 기사에 달린 댓글, 주변 반응 같은 것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괜찮대요”라고 답했다. 어디 그 속이 괜찮아질 수 있을까. 그래도 나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