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로서 내가 본 촛불집회의 몇 장면을 기록으로 남긴다. 최대한 자료에 의존할 것이나, 기억이 뒤섞여 있을 수 있다. 탄핵 전이므로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쓴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190만명(주최 측 추산)이 광장에 섰다. 광화문에만 150만명이 모였다. 눈이 오전에 그쳤다. 겨울의 초입이어서 영상 3도인데도 제법 추웠다.
법원이 처음으로 청와대 앞 200m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시민들은 청와대 인근을 에워싸는 ‘포위 집회’를 했다. 돌발행동이 일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평화 시위 기조를 해질 정도는 아니었다.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로 올라가는 인도 쪽의 한 커피숍은 매장 앞에 좌판을 깔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무료로 커피와 따뜻한 물을 나눠줬다. 가게 주인은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따뜻한 물 드시고 가세요. 제 걱정은 마세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촛불시위에 동참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한 남성은 어린 아이를 안고 아내와 함께 집회에 나왔다. 왜 나오셨느냐고 묻자 그는 “공무원이라 원래 이런 데 나오면 안 된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어린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면서 “지금은 암울하지만, 우리가 그리고 너희가 희망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가수 양희은씨가 오후 6시 본 집회 무대에 올랐다. 그는 ‘아침이슬’, ‘행복의 나라로’ 등을 불렀다. 마지막 곡은 ‘상록수’ 였다. 양씨가 어른손을 뻗으면서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고 할 때에는 조금 울컥했다. 이어 안치환, 노브레인이 무대에 올랐는데 나는 다른 쪽으로 이동하느라 못 봤다.
상인들은 비옷과 방석, 핫팩 등을 팔았다. 비옷은 장당 2000원, 방석은 1000원이었다. “바람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김진태 의원의 발언을 비꼬아 ‘진태야 내 촛불은 LED다’라고 쓴 팻말을 붙이고 LED 촛불을 파는 상인도 있었다. 주변 편의점은 핫팩과 뜨거운 캔 커피를 구매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어묵 트럭도 붐볐다. 상인들의 생명력에 대해 생각했다.
시민들은 경찰 차벽에 ‘꽃 스티커’를 붙였다. 꽃 스티커 시위는 경찰 차벽을 꽃벽으로 만들자는 한 미술가의 발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이 스티커는 19일 4차 촛불집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5차 집회에서는 잘 떼어지는 스티커로 개선했다. 집회가 끝나고 스티커를 떼야 할 의경들을 배려한 것이었다.
“의경도 시민인데 민심을 막아선 심정이 오죽하겠느냐”며 의경의 손에 쥐여줄 핫팩을 준비한 시민도 있었다. 취재하는 내게도 고생한다면서 핫팩을 하나 건넸다.
광화문 광장에 난데없이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진짜 소였다. 경기 수원에서 소를 키우는 한 농민이 트럭에 소를 싣고 왔다. 소의 등에는 흰색 천을 덮었는데, 그 위에는 붉은색으로 ‘근혜씨 집에 가소’, ‘근혜씨 하야하소’라고 쓰여있었다.
박 대통령이 비아그라를 들고 있는 피켓을 준비한 시민, 박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철창 안에서 포승줄에 묶인 퍼포먼스를 하는 대학생이 눈에 띄었다. 박 대통령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진을 붙인 펀치 게임기도 있었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웠다. S여대생 7명은 쓰레기를 받고 핫팩을 주는 캠페인을 벌였고, 고교생 3명은 대형 쓰레기봉지를 준비해 쓰레기를 담았다. 한 환경미화원은 “쓰레기 양이 많지만, 시민들이 쓰레기를 한데 모아 놓아 정리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