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오더쿠스] 7. 아버지의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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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생에게 수업을 들은 이후로 내 성적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시험에서는 드디어 마의 80점 고지를 돌파했다. (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수학 시험에서 단 한 번도 80점을 넘어본 적이 없다.)

토요일 오후에 학원에 가니 양선생이 전에 없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디서 전해들은 건지 양선생은 내 수학성적이 30점이나 올랐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기쁨에 겨웠던 내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 탓도 없진 않을 것이다.

“짜식, 내가 너는 성적 오를 줄 알고 있었다. 다 이럴 줄 알고 보충수업 시켰던 것 아니겠냐? 잘했다.”

양선생은 자기 아들 성적이 오른 것만큼이나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다. 양선생, 아니. 양선생님이 굉장히 훌륭한 위인처럼 느껴졌다. 우리 부모님은 양선생님에게 선물로 양주까지 챙겨 보내셨다. 어머니는 내가 고3이 되서 더 이상 학원 종합반 들을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된다면 수학만큼은 꼭 양선생님에게 과외를 받게 하겠다고 공언을 했다.

참, 그리고 김웅섭은 이번 수학 시험에서 딱 내가 올린 점수만큼을 받았다. 30점을 받았다는 얘기다. 아이들을 통해 김웅섭이 받은 시험 점수를 들은 양선생님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한숨만 푹푹 쉬었다. 닦달할 기운조차 잃은 듯 했다. 그 날 수업을 끝낸 양선생님이 말했다.

“웅섭이 수고했다. 시험도 끝났으니 오늘은 일찍 집에 가라.”

한바탕 두들겨 맞을 줄 알고 침울해있던 김웅섭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짐을 챙겼다. 나도 집에 가려는데, 양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박규.”

“네 선생님.”

“너 웅섭이랑 안 친해?”

“안 친하다니까요.”

“그동안 같이 다녔으니까 좀 친해졌을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선생님이 부탁 하나만 하자.”

“무슨 부탁인데요?”

“김웅섭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 걸 다 적어서 나에게 갖다다오.”

나는 양선생님의 뜬금없는 요청에 당황했다. 나는 내심 양선생님이 김웅섭을 포기한 줄 알고 있었다. 그답지 않게 의기소침한 모습은 분명히 갱생의 여지가 없는 김웅섭 때문일 거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지금 양선생님의 눈빛을 보니 그는 아직 김웅섭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듯 했다.

물론 김웅섭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많다. 그러나 그걸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김웅섭은 복잡다단하고 예측 불가능한 탱탱볼 같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미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관찰한 사례에 박하나의 견해를 주석으로 달면 분명히 그럴싸한 소고가 탄생할 것이다. 이 모든 게 내가 교무실에서 봤던 양선생님의 쪽지 덕분이지만 내가 선생님의 책상을 훔쳐봤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순 없었다.

“알았어요. 한번 해 볼게요.”

“그래. 그리고 이 부탁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양선생님은 뾰족한 눈을 씰룩거리며 윙크까지 했다. 나는 얼결에 양선생님의 부탁을 들어주고 교무실을 나왔다.

주말 내내 우리 집은 축제 분위기였다.

“다른 과목 성적은 제법 좋으니까 지금 같은 상승세로 꾸준히 하면 좋은 대학 가겠다.”

희망에 찬 부모님은 내 등짝을 쓰다듬으며 수십 번이나 같은 소릴 반복했다.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좋은 대학에 간다니. 나보다 수십 년은 더 산 어른들이 모두들 입시가 그렇게 중요하다 얘길 하니 가족끼리의 대화도 자연히 대학 얘기로 귀결되는 거겠지.

“그런데 양선생님은 어쩌다 학원 선생님이 되었다니?”

어머니가 물었다.

“원래는 고시 준비하다가 애가 생기는 바람에 시작했대요. 아들 없었으면 아직도 고시하고 있을지도 몰라.”

“얘, 너 점수 올려놓은 거 봐라. 양선생님 정도 능력이면 뭘 해도 성공하지. 지금쯤이면 고위 공직자가 되었겠다.”

“성공하긴 했죠. 사회생활도 일찍 시작했고 돈도 많이 번 것 같으니까.”

“돈 많이 번다고 꼭 성공하는 건 아니야. 젊은 사람이 자기 꿈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가 자기를 위해 이렇게 희생한 걸 알면 그 아들은 참 열심히 살아야겠네.”

어머니는 빨래를 개키며 말했다. 눈으로는 티브이 드라마를 보면서 손은 엄청난 속도로 빨래를 접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와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 은행원이었던 어머니는 참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업주부가 되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양선생님 아들은 몇 살이나 됐다니?”

“중학생일껄?”

나는 하나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말을 아꼈다. 양선생님도 분명 어디 가서 자기 아들 얘기 하는 걸 달가워하진 않을 거다. 얼마 전에 교무실에서 우연히 양선생님 아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양선생님이 지갑을 두고 급히 볼일을 보러 뛰쳐나갔을 때였는데, 두툼한 반지갑이 책상 위에 그대로 펼쳐져있었다. 지갑에는 하나의 말대로 양선생님 아들이 그렸다는 양선생님의 캐리커쳐가 꽂혀있었는데, 사실 미리 언질을 받지 못했다면 그게 양선생님을 그린건지 알아챌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 말대로 정말 더럽게 못 그렸다.

캐리커쳐보다 내 관심을 끈 것은 양선생님 아들의 증명사진이었다. 꾀죄죄한 얼굴의 빼빼마른 남자아이였다. 배추머리와 찢어진 눈은 양선생님을 꼭 닮았다. 그러나 그의 인상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하고 음침한 데가 있었다. 양선생님도 썩 좋은 인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똑 부러지고 신뢰할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있었다.

어쩌면 양선생님의 아들은 김웅섭과 비슷한 타입일지도 모른다. 양선생님이 김웅섭에게 보이는 집착도, 애증의 관계도, 전부 자기 아들을 김웅섭에게 투영해 어떻게든 희망의 끈을 찾아보려는 아버지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다음날 하나를 만난 나는 다짜고짜 말을 꺼냈다.

“있잖아.”

“스톱. 너 또 김웅섭 얘기 할 거지?”

“내가 김웅섭 빠돌이냐? 매일 김웅섭 얘기만 하게?”

“좋아. 그럼 오케이.”

“양선생님 아들 말인데......”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렇지.”

“뭐야. 갑자기 왜? 머리 아파?”

“됐어. 하던 얘기나 마저 해봐.”

“양선생님 아들, 웅섭이랑 느낌이 되게 비슷하더라.”

“어? 설마 직접 봤어?”

“아니 사진으로. 왜? 직접 보면 안 되는 거야?”

나는 하나에게 지난번 교무실에서 양선생님 아들 사진을 훔쳐본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 얘기를 들은 하나가 목소리를 낮췄다. 하나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양선생님 아들, 히키코모리야. 방문 걸어 잠근 지 1년이 넘었대.”

“방에서만 산다고? 똥은 어떻게 싸?”

“똥이야 알아서 싸겠지. 양선생님 성격에 아들이 덕질 하는 걸 두고 보겠냐? 한번은 아들 방에 들어가서 애니메이션 포스터랑 인형을 죄 갖다 버렸대. 학교 갔다 돌아온 양선생님 아들이 그걸 보고 어떻게 했는지 알아?”

“어떻게?”

하나는 나에게로 다가와 귓속말을 속삭였다.

“혀를 깨물었대.”

“자살시도?”

“죽진 않았어. 근데 혀끝이 잘려서 말을 제대로 못한대.”

밥 먹다가 혀를 깨물어도 아파 죽겠는데, 어떻게 자기 혀를 씹을 수 있을까? 나는 양선생님이 김웅섭에게 보이는 집착의 본질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맞아. 그래서였던 거야.”

“뭐가?”

“양선생님은 자기 아들과 김웅섭이 닮았기 때문에 그 녀석에게 집착한 거라고. 김웅섭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아들에게도 좀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나에게 그런 과제를 줬던 거야.”

시큰둥하던 박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과제?”

“아. 아무것도 아니야. 보충 문제집 말이야. 나 이번에 시험 대박 났잖아.”

“근데 왜 과제를 줘?”

“원래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해야 되는 법이지.”

“그래? 나한테도 한번 채찍질 좀 당해볼래?”

하나는 손바닥으로 내 팔이며 어깨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넌 도대체가, 맨날 김웅섭 아니면 양선생 얘기. 세상에 신기하고 재미난 일이 그것밖에 없냐? 너 스토커야? 니가 김웅섭 오타쿠야?”

박하나는 제대로 삐졌다. 나는 늦게나마 하나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이리저리 달래보았다. 하지만 나는 하나가 재잘대는 걸 듣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머리 속은 어느새 김웅섭과 양선생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길에서 양선생님을 만난 건 그로부터 몇 주 뒤의 일이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동네 자그마한 치킨집에 들어가 주문을 하려던 찰나, 양선생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양선생은 사회선생님과 나란히 바에 앉아 대단히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곁에 놓인 재떨이는 바늘 하나 세울 자리도 없을 만큼 빽빽하게 담배꽁초가 꽂혀있었다. 양선생님은 완전히 술에 취해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치킨을 포장하는 동안 나는 양선생과 사회선생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 새끼는 결혼도 안하고, 일도 안하고 그냥 그렇게 방구석에서 평생 살다 뒤질 작정인거야. 다시 태어나면 리리컬 나노하가 되고 싶다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에이, 양선생님. 뭐 우리도 가끔 그런 식으로 말하잖아요. 다시 태어나면 여자로 태어나보고 싶다고.”

“이런 씨발!”

양선생님은 욕을 하며 500cc 잔으로 바를 내려쳤다.

“이 새끼는 미소녀 캐릭터가 되고 싶은 거라고! 2D란 말야 2D!”

“양선생님, 진정하세요.”

“이 새끼는 씨바, 방구석에서도 뭔 택배를 그렇게 시켜대는지, 씨발! 택배를 뜯어보기라도 했다간 또 방안에서 악을 쓰고 지랄을 한다고. 벌거벗은 여자 그려진 배게나 메이드복 따위나 사면서 말이야!”

최선생이 다독이는 동안 양선생님은 맥주 한 잔을 더 시켜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그래서 씨바, 내가, 어! 그깟 종이 쪼가리 몇 개 찢었다고, 애비가 종이 쪼가리 몇 개 찢었다고 혀를 깨물어? 최 선생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회선생님은 말없이 술잔을 들었다. 내가 최 선생이라도 달리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잦아들었다. 긴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양선생님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내가 걔 공부 못한다고 뭐라고 한 적 한 번도 없네. 적성에 안 맞으면 안할 수도 있지. 차라리 애비 앞에 와서, 아버지 제가 지금 뭘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절 믿고 천만 원만 빌려 주십쇼! 차라리 남자답게 그렇게 말이라도 했어봐. 차라리 그런 객기라도 있었어봐.”

“그 뭐냐, 양선생님 아드님이 그림에 소질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드래곤볼 알죠? 그거 그린 작가는 재산이 수천억이래요.”

“최 선생이 그 새끼가 그린 그림 봤어?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그림으로 먹고 살겠다니 기도 안 차지. 만화가 장난이야? 아직 젊은 놈이니까 해보겠다고 도전이라도 하면 부모 입장에선 안 될 거 뻔히 알아도 속아주는 셈 믿어주기라도 하겠어. 그런데 이놈은 그림을 안 그려. 하루 한 시간도 안 그리는 놈이 입만 열면 허풍만 떨고. 자기가 구상해 놓은 만화를 그리기만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고, 뭐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나올 거라는 둥....... 어휴.”

치킨 포장 나왔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나는 더 이상 양선생의 말을 엿들을 수 없었다.